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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암제일교회 on Apr 15, 2025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보다 더 중요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결정의 순간이 올 때, 우리는 종종 자신의 판단에 의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구할 때, 우리의 길을 맡아주시고 그분의 뜻을 이루십니다. 시편 37편 5절은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그 선택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03:03]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시편 37:5, ESV)
Reflection: 당신의 삶에서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있는 선택이 있습니까? 오늘 그 선택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구해보세요.
바울은 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이상해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그 안에 놀라운 계획과 섭리가 담겨 있습니다. 바울의 여정은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통해 그분의 나라를 확장하시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시며 성장시키십니다. 바울이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셨듯이,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신 길을 믿고 나아갈 때 그분의 놀라운 섭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21:51]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9, ESV)
Reflection: 당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계획이 이해되지 않는 순간이 있습니까? 그 순간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의 계획을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세요.
바울이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의 섭리로 인해 천부장이 개입하여 바울을 구출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계획이 바울의 삶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힐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섭리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우리의 눈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는 반전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24:28]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시편 18:2, ESV)
Reflection: 현재 당신이 직면한 위기나 어려움이 있습니까? 그 상황에서 하나님의 보호와 섭리를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세요.
우리의 생각이 짧을 때가 있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길을 믿고 나아갈 때, 그분의 놀라운 섭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계획 안에 있음을 믿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반전시키실지 기대하며, 그분의 빛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28:03]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시편 37:23, ESV)
Reflection: 당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까? 그 부분을 하나님께 맡기고 믿음의 길을 걸어보세요.
우리의 가장 깊은 상처와 아픔조차도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반전시키실 것을 믿고, 그분의 빛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계획 안에 있음을 믿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반전시키실지 기대하며, 그분의 빛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35:0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편 27:1, ESV)
Reflection: 당신의 삶에서 어두운 순간이 있다면, 그 순간에 하나님의 빛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 구체적인 방법을 생각해보세요.
오늘의 말씀은 "플롯 트위스트"라는 주제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우리의 선택에 대한 깊은 통찰을 나누었습니다. 한 청년이 글로벌 IT 기업과 아프리카의 기독교 NGO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시편 37편 5절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고 아프리카를 선택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사도행전 21장에서 바울의 예루살렘 여정을 살펴보았습니다. 바울은 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로 인해 바울은 위기에서 구출되었고, 이는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이 바울의 삶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바울의 이야기는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의 눈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는 반전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통해 그분의 나라를 확장하시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시며 성장시키십니다. 바울이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셨듯이,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신 길을 믿고 나아갈 때 그분의 놀라운 섭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장 깊은 상처와 아픔조차도 은혜로 변화시키시며, 그분의 길을 걸어가게 하십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계획 안에 있음을 믿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반전시키실지 기대하며, 그분의 빛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청년이 이 말씀을 좀 깊이 묵상하면서 기도하는 가운데 문득 그런 생각을 주시더라는 거예요. 어떤 생각이냐면 아, 단순히 내가 이 길, 이 길, 어떤 좋은 길을 선택하는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느 길을 선택하든 간에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그분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이 더 중요한 기도가 되겠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00:01:48]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요 때때로 이런 의문이 듭니다. 과연 우리가 읽고 있는 이 성경이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신앙이 정말 진짜일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럴 때 여러가지 증거들이 있는데 이것을 증명할 수 있는 강력한 증거 중에 하나가 뭐냐면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완전하게 변화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00:03:52]
그런데 이 야고보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또 예수님의 이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면서 완전히 180도 바울과 같이 달라진 삶을 살게 되었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 야고보가 어떤 일을 했습니까? 예루살렘의 초대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고요. 후에는 우리가 잘 아는 신약 성경의 야고보서를 쓴 사람이 되기도 하죠. [00:05:15]
이 문제에 대해서는 사도행정 15장의 예루살렘 공의에서 이미 해결된 문제였지 않습니까?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당시에 뭐가 해결됐어요? 당시에 이 구원이라는 것은 할래나 율법이나 어떤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지금 그렇게 믿고 있거든요. 할래를 행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고 율법을 잘 지켜야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00:08:41]
바울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거든요. 물론 바울은 타협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을 이룬다는 그거에 대해서는 타협이 없지만 지금 이 굴러가는 상황을 봤을 때는 뭔가 방법이 좀 필요했거든요. 그래서 그 방법을 받아들입니다. 수락을 했고요. 그들에게 비용을 대줬고요. 그들의 서원 가정을 함께 했습니다. [00:12:55]
이 바울을 만나자마자 이들이 군중을 선동하면서 죽이려고 하는 걸 볼 수 있거든요. 28절 봅시다. 28절 보면요. 이들에게 바울의 제목을 두 가지를 얘기하는데 28절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소리쳤다.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합세하여 주십시오. 이 자는 어디에서나 우리 민족과 율법과 이곳을 거슬러서 사람들을 가르칩니다. [00:14:30]
그러니까 지금 바울의 입장에서 기가 찬 거예요. 안 그래도 지금 헛소문 때문에 힘들어가지고 겨우 이미지를 조금 변환하나 싶었는데 이런 일이 터져버리니까. 지금 예수님을 믿는 유대교뿐만이 아니라 그렇지 않은 유대인들도 다 같이 들고 일어난 거예요. 역시 우리가 생각했던 바울이 저 바울이었구나. 악마 같은 사이였구나. [00:17:08]
바울의 희생 가운데 이 위기 가운데 먼저는 뭐예요? 이 위기 가운데 천부장이 개입했다는 거예요. 천부장이 바울에게 급히 달려옵니다.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서 개입하셨는데 조금이라도 늦었더라면 바울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어요. 게다가 아까 보았잖아요. 천부장이 바울을 과거의 폭동을 일으켰던 이집트인들을 오해하게 되는 거예요. [00:23:12]
우리 눈에는 불가능할 것 같고 위험해 보이고 어려운 길이라도요. 그 길이 하나님께서 주신 길이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 뜻을 위한 길이라면요. 하나님께서는요. 이 바울의 인생과 같이 우리의 인생도 이 인생의 플로트 여러가지 이 사건들을요. 트위스트 하신다는 거예요. 꺾으신다는 거예요. 흔드신다는 거예요. 완전히 바꿔주신다는 거예요. [00:24:57]
물론 죽으면 죽으리라 고백했지만 바울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신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비전, 사명, 로마로 가겠다는 그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주실 줄을 믿었건 거예요. 그 믿음으로 죽을리라. 그럴 수 있지만 당당하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갔다라는 겁니다. [00:27:29]
여러분들이 어떠한 상황과 어떠한 상황 속에 있든지 간에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길이면요. 물론 우리가 봤을 때는 장애물이 있고 넘지 못할 것 같고 위험해 보이고 두려움이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요? 끌고 가시는 거예요. 조금만 참아. 조금만 견뎌내봐. 그건 너를 위한 길이야. [00:29:03]
어느 길이든 간에 여러분 하나님을 붙잡고 가는 길은요. 다 사명의 길이고요. 하나님의 길이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길입니다. 대신 그 모든 상황 속에서 나의 인생을 붙잡고 계시고 섭리하고 계시고 늘 함께 하시는 그 하나님을 붙잡으십시오. 그때의 모든 상황들이 역전될 것이고 오늘 이 코리 여사처럼 우리 인생의 우연같은 기적들이 찾아올 것이고요. [00:30:02]
제가 말씀을 가지고 "플로트위스트"라는 제목으로 하나의 말씀을 좀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취업을 준비하던 한 청년이 두 가지 제안서 메일을 받게 됩니다. 하나는 평소에 동경하였던 글로벌 IT 기업의 채용 제안이었고요. 또 하나는 그 청년이 어릴 때부터 마음을 품었던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기독교 NGO의 제안이었습니다. IT 기업은 연봉이 1억이 넘는 파격적인 대우와 실리콘밸리 본사 발령을 제시했었고요. 그리고 NGO는 현재 청년들에게 IT 기술을 가르치면서 보금을 전하는 사역을 제안했는데 봉급은 최저생계비 정도였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느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누구에 따라서 아주 쉬운 선택일 수도 있겠지만, 저 같았으면 IT 기업에 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에게는 굉장히 깊은 고민이 되는 결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두 곳 다 그 청년이 진심으로 가고 싶었던 곳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런 고민이 들겠죠. 과연 어느 길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일까? 너무 고민이 되는데 결정이 되지 않으니까 고민 끝에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목사님도 그 얘기를 듣고 난 다음에 우리가 함께 기도하고 또 하나님의 뜻을 찾자고 얘기를 했고요. 그 이후에 카톡으로 이 말씀 하나를 보내주셨는데요. 바로 10편 37편 5절의 말씀이었습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시작! "내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리라." 아멘.
청년이 이 말씀을 좀 깊이 묵상하면서 기도하는 가운데 문득 그런 생각을 주시더라는 거예요. 어떤 생각이냐면, 아, 단순히 내가 이 길, 저 길, 어떤 좋은 길을 선택하는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느 길을 선택하든 간에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그분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이 더 중요한 기도가 되겠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결국 아프리카 행을 선택하게 되었고요. 2년 후에 그곳에서 자신의 기술로 현지 청년들의 삶을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본인도 성장하는 시간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청년의 얘기는 우리에게 좀 핵심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과연 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떻게 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하면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살펴볼 이 사도행전 21장의 바울의 얘기는 이러한 고민에 대한 귀중한 통찰을 줍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을 떠올려보면 이 바울도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아주 유사한 사람들로부터 불가능하다는 경고를 받았을 것입니다. 딜레마를 겪지 않습니까? 수많은 성령의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반드시 큰 고난이 있을 거라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바울은 어떻겠습니까? 자신의 길을 확신하며 그 길을 걸어간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 과연 이 바울이 선택한 이 길, 과연 옳은 길이었을까요? 오늘 본문을 보면 드디어 이제 이 바울이 예루살렘에 들어갔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을 하고 그 형제들이 기쁘게 맞이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17절, 18절 보겠습니다.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요, 때때로 이런 의문이 듭니다. 과연 우리가 읽고 있는 이 성경이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신앙이 정말 진짜일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럴 때 여러 가지 증거들이 있는데, 이것을 증명할 수 있는 강력한 증거 중에 하나가 뭐냐면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완전하게 변화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우리가 지금 계속 보고 있는 사도 바울이잖아요. 이 바울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그런데 또 한 명의 놀라운 사람이 한 명이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오늘 이 본문에 등장하는 야고보라는 사람이에요. 목사님, 야고보가 성경에 굉장히 많이 나오죠. 야고보는 예수님 제자들 중에서도 두 명이나 있어요. 세베드의 아들 야고보, 알페오의 아들 야고보. 그런데 이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 오늘 등장하는 야고보는 예수님의 친동생입니다. 아니에요. 목사님, 그러면 친동생이라면 예수님을 평생 따라다녔을 텐데 무엇이 달라졌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 마태복음 13장 말미를 보시면요. 예수님이 가족들에게 배척을 당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그 배척했던 가족 중에 한 명이 바로 이 야고보였습니다.
그런데 이 야고보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또 예수님의 이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면서 완전히 180도 바울과 같이 달라진 삶을 살게 되었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 야고보가 어떤 일을 했습니까? 예루살렘의 초대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고요. 후에는 우리가 잘 아는 신약 성경의 야고보서를 쓴 사람이 되기도 하죠. 오늘 바울은 그 야고보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이 야고보가 이끌고 있는 이 예루살렘 교회는요. 바울과 그의 일행들을 환영하면서 만찬을 베풉니다. 얼마나 많은 질문들이 있었겠어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성교 기간 중에 어떠한 은혜를 받았습니까? 사도 바울이 앞에 서서 그간 13년간 있었던 이 바울의 1차, 2차, 3차 여행에 은혜의 사건들을 쭉 얘기하는 겁니다. 아마 은혜의 감동의 도가니였을 거예요.
이렇게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 난 다음에 한 지도자가 나와서 이야기를 하는데, 바울 선생님, 지금 이 예루살렘 교회의 현 상황이 이렇습니다. 라고 하면서 무슨 말을 하냐면요. 20절, 21절 보실까요? 세번역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들은 이 말을 듣고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에게 말하였다. 뭐라고 합니까? 형제여, 당신이 보는 대로 유대 사람 가운데는 믿는 사람이 수만 명이나 되는데 그들은 모두 율법의 열성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을 소문으로 듣기로는 당신이 이방 사람 가운데서 사는 모든 유대 사람에게 한례도 주지 말고 유대 사람의 풍속도 지키지 말라고 하면서 모세를 배척하라고 가르친다."
무슨 얘기냐면 지금 이 예루살렘 교회는 사실 대부분이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을 믿는 사람들이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뭐라고 얘기하는 겁니까? 예수를 믿으면서도 여전히 이 유대인들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들은 이 유대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뭐예요? 할래잖아요. 이들은 할래도 받았고 이 구약의 율법의 613개라는 되는 율법의 조항들을 여전히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지키고 있다라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럼 네 지금 바울 선생님은 이 율법을 거스리면서 바울 선생님은 모세를 무시하더라. 율법을 무시하더라. 율법은 아예 없어도 된다더라.라는 그런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라고 이야기를 한다는 거예요.
지금 바울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어요. 왜냐하면 사실 이 문제는 저희가 사도행전 15장에서 다뤘던 문제고, 우리 지난번 갈라디아서 다룰 때도 했었거든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의에서 이미 해결된 문제였지 않습니까?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당시에 뭐가 해결됐어요? 당시에 이 구원이라는 것은 할래나 율법이나 어떤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지금 그렇게 믿고 있거든요. 할래를 행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고 율법을 잘 지켜야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뭐라고 합니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라고 확증을 했거든요. 예루살렘 교회뿐만 아니라 지도자와 이 바울을 따랐던 사람들이 모두가 합의된 내용이 이 내용이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무슨 얘기예요? 아직도 여전히 이 예루살렘 교회는 한례도 중요했고요. 율법 지키는 것도 중요했기 때문에 지금 바울 선생님에 대한 소문이 너무너무 좋지 않습니다라고 지금 얘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바울의 입장에서는 되게 당황스러워요. 아니 왜냐하면 지금 바울을 내내 쫓아다녔던 극성의 사람들이 있었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어느 일부 정도만 그렇게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 이게 웬걸? 교회에 와봤더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수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이게 사람의 생각이 참 쉽게 바뀌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고민이 되는 거죠.
이때 그 예루살렘의 지도자 중에 한 사람이 바울에게 한 가지 좋은 제안을 하는데요. 23절, 24절을 보실까요? 세번역 버전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이제 해결책을 좀 하나 제안을 한 것 같아요. 당신은 우리가 말하는 대로 하십시오.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스스로 맹세한 사람이 네 명 있습니다." 이 말이 서원을 했다는 얘기거든요. 그리고 24절에 "이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함께 정결 예식을 행하고 그들이 머리를 깎게 하고 그 비용을 대십시오. 그러면 사람들은 모두 당신의 소문이 전혀 사실이 아니며 도리어 당신이 율법을 잘 지키며 바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좀 풀어서 얘기하면 지금 이 예루살렘 교회의 율법을 잘 지키는 성도님들 중에 지금 하나님 앞에 스스로 맹세한 즉 서원을 준비하는 사람이 네 명이 있다고 지금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여러분, 이 서원은 보통 언제 하냐면, 중병에서 치유를 받았다거나,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께 부탁을 했더니 해결받은 이런 사람들, 특히 하나님께 특별한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이 이 율법에 따라서 하나님께 부탁을 했더니 하나님 앞에 서원을 하겠습니다. 우리 옛날에도 그런 거 있었어요. 옛날에 우리 부모님들이 자녀들이 아플 때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했냐면, "하나님, 우리 아이 살려주시면 제가 이 아이를 하나님 일에 쓰임 받도록 제가 올리겠습니다." 이런 식의 기도인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이제 네 명이 있다라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이 서원에는 엄격한 절차들이 있는데, 이것도 사실 다 율법적인 거예요. 율법에 적용되어 있는데 어떤 거냐면 이 서원은 최소 한 달 이상을 해야 되고요. 그리고 이 서원 기간에는 고기라든지 포도주는 마실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서원을 시작하면 이제 자신의 머리를 자를 수 없는데, 이 서원이 되는 마지막을 기점으로 7일 전에 이제 이 머리를 밀 수 있다고 해요. 그래서 사실 우리 이것도 했어요. 사도행전 18장에서 갱그리아에서 바울이 서원을 마치고 난 다음에 머리를 잘랐던 장면이 있습니다. 이렇게 절차가 끝나고 난 다음에 마지막에 뭐 하냐면 이제 제사 예배를 드리는데 이 번제, 화목제, 소제를 드리면서 이 서원이 이제 마무리되는 거예요. 이 과정인 거예요.
문제는 지금 앞의 거는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문제가 뭐냐면 제사 비용이 어마어마했다라는 거예요. 여러분 아시다시피 지금 이 예루살렘에는 기근 때문에 힘들었지 않습니까? 그리고 성도님들이 대부분은 가난했던 사람들이거든요. 감당하기가 어려웠던 거예요. 그 상황을 보고 지금 바울의 상황과 맞췄을 때 이거 잘하면 좀 잘 맞춰지겠는데라고 생각이 된 거예요. 그래서 지금 뭘 제안하냐면, 바울 선생님, 지금 이들이 이런 서원을 하는데 이 서원에 될 비용이 없습니다. 이 비용을 선생님께서 대신 대주시고, 그리고 이 사람들이 이 서원하는 과정 가운데 함께 해주십시오. 그러면 지금 외부에서 소문이 안 좋죠. 그런데 바울 선생님이 그렇게 돈도 대주고 함께하는 걸 보면 이 사람들이 아, 바울 선생님이 그런 사람이 아니구나. 율법도 잘 지키려고 하시는 분이고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을 존중하면서 함께 가려고 하는가 보다라고 생각이 들게끔 하라는 거죠.
바울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거든요. 물론 바울은 타협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을 이룬다는 그거에 대해서는 타협이 없지만, 지금 이 굴러가는 상황을 봤을 때는 뭔가 방법이 좀 필요했거든요. 그래서 그 방법을 받아들입니다. 수락을 했고요. 그들에게 비용을 대줬고요. 그들의 서원 과정을 함께 했습니다. 그래서 모르긴 몰라도 그 바울에 대한 이미지 오해가 조금씩 풀려가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요, 이 서원이 마지막을 향해서 달려갈 즈음에 예상치 못한 사건이 등장해요. 27절 보실까요? 27절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이래가 거의 참에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잡았다." 소원이 끝날 무렵에 지금 한 무리를 만나게 되는데 그 무리가 누구예요? 아시아 출신의 유대교 강경파로서요. 이 사람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이었어요. 그리고 이들이 누구였을까요? 바울 성교 내내 바울을 죽이려고 쫓아다녔던 그 유대인들을 만나게 된 겁니다.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더니 하필 그 성전에서 마주치게 된 것이죠.
사실 이 만남은 우연은 아니고요. 필연적인 만남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들은 바울이 여기 도착했다는 것을 들었을 거고, 그리고 사실은 바울을 만나면 죽이려고 작정을 하고 있었던 찰나예요. 왜냐하면 다음 본문 보십시오. 28절... 이 바울을 만나자마자 이들이 군중을 선동하면서 죽이려고 하는 걸 볼 수 있거든요. 28절 봅시다. 28절 보면요. 이들에게 바울의 제목을 두 가지를 얘기하는데 28절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소리쳤다.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합세하여 주십시오. 이 자는 어디에서나 우리 민족과 율법과 이곳을 거슬러서 사람들을 가르칩니다." 아까 이 바울이 오해받았던 그 대목인 거죠. 그리고 더욱이 "이 자는 그리스 사람들을 성전에 데리고 가서 이 거룩한 것을 더럽혀 놓았습니다." 라고 두 가지 제목을 던진 거예요.
아까 봤듯이 첫째는요. 각처에서 이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비방했다면서 바울을 지금 얘기하고 있고, 바울이 이 율법을 모욕했다고 지금 얘기하는 거고, 두 번째는 뭐냐면 바울이 헬라인을 데리고 이 성전에 들어와서 거룩한 것을 해쳤다라고 얘기하고 있거든요. 이게 뭔 말인가. 핏핏단을 보여주십시오. 이게 지금 성전의 구도입니다. 이스라엘 성전의 구도인데 지금 크게 두 가지 섹터로 나누시는 게 보이십니까? 위에가 이제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성소와 성막이 다 있는 곳이고요. 성소가 있는 곳이고요. 그 밑에 보시면 뭐라고 적혀 있습니까? 이방인의 뜰이라는 곳이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 이방인들은 이 이방인의 뜰까지만 갈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만약에 이곳을 넘으면 그 앞에 팻말이 하나 있는데 어떤 글자가 적혀 있어요? 어떤 외국인도 성전과 경계를 둘러싼 장벽 안으로 들어올 수 없으며 침입한 자는 사형에 처할 수도 있다라고 지금 기록이 되어 있는 거죠.
그러니까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아시겠어요? 사도 바울이 헬라인을 데리고 지금 이방인의 뜰이 아니라 저 성전 안쪽으로까지 들어갔다고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무엇을 근거로요? 29절을 한번 보실까요? 그 근거가 되게 웃깁니다. 그 근거가 되게 웃겨요. "이는 그들이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신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그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하며..." 뭐라고요? 들어간 걸 본 게 아니라 그냥 신에 지금 이 드로비모라는 사람이 바울과 함께 성교행을 했던 평신도이거든요. 이 사람과 그냥 신에를 거느렸을 뿐인데 이들이 뭐라고 하는 거예요? 이를 붙잡고 그 안에 들어갔다라고 지금 뭐예요? 거짓 선동을 한 거예요. 우리나라로 말하면 가짜 뉴스를 퍼뜨린 겁니다. 그러니까 예나 지금이나 선동하기에는 가짜 뉴스가 최고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지금 바울의 입장에서 기가 찬 거예요. 안 그래도 지금 헛소문 때문에 힘들어가지고 겨우 이미지를 조금 변환하나 싶었는데 이런 일이 터져버리니까. 지금 예수님을 믿는 유대교뿐만이 아니라 그렇지 않은 유대인들도 다 같이 들고 일어난 거예요. 역시 우리가 생각했던 바울이 저 바울이었구나. 악마 같은 사이였구나. 모두가 격분하게 돼요. 30절 보실까요? "이 성에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이 이방인의 가로에 막고 있는 문을 닫았고요. 바울을 죽이기 위해서 바울을 잡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합니까? 사도행전 맨 앞에 나왔던 스테반의 죽음과 같이 스테반같이 성전 보독죄로 바울을 죽이려고 하는 겁니다. 여기서 지금 끌어내라는 말은 뭐냐면 그냥 곱게 이렇게 데리고 가는 게 아니라 짐승을 묶어서 질질 끌고 가는 것과 같다고 지금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바울의 운명은 이제 시간 문제인 겁니다. 짧으면 몇 분? 길어야 한두 시간 안에는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해 있는 거예요. 이게 지금 바울이 직면한 상황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했던 그 일이 지금 실제로 일어나는 상황이라는 거예요. 그런데요, 그때 이 소식이 순식간에 이 예루살렘 지역을 관할했던 그때 로마의 관할에 있었지 않습니까? 이 로마의 천무장에게 그 소식이 들리게 되었어요. 당시 이 예루살렘은 로마 수비대가 지키고 있었는데 이 안토니오 요세라고 해서 이 예루살렘 성전 위쪽에 배치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밑에가 다 보이는 거예요. 그런데 이 천무장이 밑에 보니까 지금 상황이 난리가 아닌 거죠. 무슨 일이야. 지금 뭔가 난리가 났습니다. 그랬더니 이 소식을 들었던 이 천무장이 그 소식을 듣자마자 불이 났게 그 사건의 현장으로 달려오게 된 겁니다. 32절 보실까요? "급히 군인과 백부장을 거리고 달려 내려가니 그들이 천무장과 군인들을 보고 바울치기를 그쳤더라."라는 거예요.
여기서 아까 이 치다라는 말도요. 이 팁도라는 말인데 그냥 단순히 때리는 게 아니라 주먹으로 사람을 세게 치거나 흉기를 가지고 때리는 걸 얘기해요. 그러니까 지금 이들은 바울을 묶어놓고요. 흉기로 그냥 몰매질을 한 거예요. 집단 구타를 당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목숨이 정말 위태로운 상황이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때 누가 개입했다고요? 천무장이 그 순간에 개입을 하게 되고 그들을 제재할 수 있었다라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이걸 보면요. 사실 우리가 봤을 때는 크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아요. 문제가 있었으니까 천무장이 와서 제재한 거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이 상황은요. 유대인들 입장에서는요. 이해가 되지 않은 상황이에요. 아니 왜? 너네들이 뭔데 왜 이 상황에 개입을 해? 이런 이야기예요. 왜 그러냐면요. 보통 로마는 유대인들의 어떤 문제에 대해서, 특히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웬만하면 개입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옛날에 개입을 했다가 이들이 봉기를 일으켰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이 로마 당국에서도 웬만하면 자기들끼리 해결하게 놔두라고 그렇게 지침이 내려온다고 해요.
그런데 지금 사실 상황 봤을 때는 이 천부장 입장에 크게 큰 문제는 아니거든요. 왜 갑자기 천부장이 이 사건에 개입을 했을까. 그 이유가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38절에 나오는데요. 사실 이유가 굉장히 황당합니다. 한번 보실까요? "그러면 당신은 얼마 전에 폭동을 일으키고 4천명의 자객들을 이끌고 광야로 나간 그 이집트 사람이 아니요?"라고 반문을 하였다. 이 무슨 얘기인 줄 아세요? 쉽게 얘기해서 천부장이 바울을 다른 사람으로 착각했다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냐면 과거에 이 예루살렘 땅에서 대규모 폭동을 일으켰다가 도망간 사람, 애굽 사람이 있는데 그 애굽 사람이 4천명을 데리고 도망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천부장은 이 애굽 사람이 다시 와서 이 예루살렘을 혼동케 한 줄 알았다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지금 불이 났게 또 큰일이 날까 봐 불이 났게 와서 이들을 제지하려고 봤더니 그 사람이 아니라 바울이었다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여러분 이 사건을 보면요. 지난 시간에 바울을 왜 이렇게 말렸는지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바울에게는 충분하게 이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는 경고를 계속했습니다.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이 성령의 사람들과 기도하는 사람들이 바울 선생님, 예루살렘에 가면 안 될 것 같아요. 큰일 날 것 같아요. 경고하고 또 경고하고 또 경고했어요. 경고하고 또 경고하고 또 경고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본문을 보면 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가서 이런 험한 꼴을 당하느냐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다는 거예요. 물론 우리가 지난 시간에 바울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분명한 이유는 있었죠. 뭐였죠? 은혜 때문이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맥락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죠. 아니 바울은 기도도 안 했나 봐. 바울은 성령의 역사가 성령을 체험하지 않았던 사람인가 봐. 아니 이왕 갔으면 그래도 복음이라도 한마디라도 전해야 되는데 지금 복음은 복음이 뭐예요? 그래서 가자마자 지금 잡혀가지고 죽이려고 하는 상황이잖아요. 아, 바울도 지금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좀 자세하게 들여다보면요. 다른 관점이 보입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이 바울의 선택이 이상해 보이지만요. 사실 이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는 그 안에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섭리가 담겨있다라는 거예요.
다시 하나님의 시선으로 이 말씀을 볼까요? 바울의 희생 가운데 이 위기 가운데 먼저는 뭐예요? 이 위기 가운데 천부장이 개입했다는 거예요. 천부장이 바울에게 급히 달려옵니다.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서 개입하셨는데 조금이라도 늦었더라면 바울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어요. 게다가 아까 보았잖아요. 천부장이 바울을 과거의 폭동을 일으켰던 이집트인들을 오해하게 되는 거예요. 만약 이러한 오해가 없었다라면요. 천부장은 아예 개입을 하지 않았을 거고요. 바울은 역시 그 즉시 즉사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결국에는 이 개입을 통하여서 바울이 자신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라는 거예요.
이후에도 이 유대인들이 얼마나 독하냐면 끌려가고 있잖아요. 그 두 분의 전통하세요. 다음 영상에서 만나요. 끌려가는데도 어떻게 그 와중에서도 잡아서 죽이려고 때리고 던지고 난리도 아니었대요. 그래가지고 이 천무장이 한울 수 없이 이 죄인의 신분으로 이렇게 들고 갔다라고 기록이 되어 있어요. 더 이상 제재하지 못하도록. 여러분 하나님의 관점에 봤을 땐 이 바울은요. 이 바울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섭리하시고 인도하셨다라는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는 거예요.
저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 가운데 오늘 제목이 뭐예요? 이 플로트위스트라는 말이죠. 혹시 플로트위스트라는 말이 어떤 말인지 아십니까? 한번 잘 생각해 보십시오. 플로트를 트위스트한다. 반전입니다. 반전. 반전 인생을 얘기해요. 우리 눈에는 불가능할 것 같고 위험해 보이고 어려운 길이라도요. 그 길이 하나님께서 주신 길이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 뜻을 위한 길이라면요. 하나님께서는요. 이 바울의 인생과 같이 우리의 인생도 이 인생의 플로트 여러 가지 사건들을요. 트위스트 하신다는 거예요. 꺾으신다는 거예요. 흔드신다는 거예요. 완전히 바꿔주신다는 거예요.
여러분 바울도 보십시오.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바울을 지키시는 겁니까? 하나님께서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이 바울을 붙으시는 데 분명한 이유가 있어요. 왜요? 바울의 비전. 바울의 사명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바울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19장 21절에 이렇게 나오죠.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무슨 말이에요? 로마에 가서 땅끝까지 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가 전해야 됩니다. 그런데 이 꿈은요. 바울의 자신만의 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바울에게 허락하신 꿈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바울의 꿈을 이루시기 위해 그의 인생 가운데 개입하시고 역사하시고 트위스트 하시면서 그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면서 복음을 끝까지 전할 수 있도록 하셨다라는 거예요.
물론 그 순간에 바울이 매를 맞고 아프니까 하나님을 원망했을 수 있지만요. 넓게 봤을 때 뭐예요?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을 보호하셨다는 걸 볼 수 있어요. 그리고요. 바울의 목표는 사실 복음을 전하는 거잖아요. 오히려 이렇게 하나님을 개입하심으로써 이제 죄인의 신부가 되지 않습니까? 오히려 이 죄인의 신부로요. 로마로 가기 전까지 무려 여러 번을 오히려 공식 석상의 죄인의 신부로 있지만 수많은 유대인들과 수많은 이방인들 앞에서 자신이 믿었던 예수 그리스도를 복음을 전하는 기회를 맞이하게 됩니다. 당당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복음을 전해요. 그리고 로마로 갈 때도요. 그냥 혼자 가지 않아요. 로마의 군사들 보호병 200명이랑 기병 70명이랑 참병 200명, 총 470명의 호의를 받으면서 로마까지 들어가게 됩니다. 저는 이게 바로 하나님의 계획하심, 섭리라고 생각해요. 은혜라고 생각해요.
이 상황이 믿음의 형제들은 성령 안에서 이 바울에게 닥칠 어려움을 보았을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들의 통찰력은 여기까지였습니다. 사실 여러분 바울이 몰랐겠어요. 바울도 기도하는 사람이고 영적인 사람이었잖아요. 바울에게도 이렇게 일어날 거 분명히 알고 있었어요. 그러나 바울은요. 더 나간 거예요. 물론 죽으면 죽으리라 고백했지만 바울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신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비전, 사명, 로마로 가겠다는 그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주실 줄을 믿었건 거예요. 그 믿음으로 죽을리라. 그럴 수 있지만 당당하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갔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우리의 생각이 가끔 짧았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우리는 내가 받은 이 응답이 옳다고 고집할 수 있지만요. 그게 전부가 아닐 수도 있어요. 이사야 55장 8절 말씀 보면 어떤 얘기가 하냐면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다"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우리의 생각은 하나님,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하나님,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길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 뭐라고 하십니까? "야, 그건 네 생각이고. 나는 아닌데. 나는 네가 그 길을 더 걸어가 봤으면 좋겠는데." 물론 그 가정 가운데 바울과 같이 어려움이 있을 수 있겠죠. 힘듦이 있을 수 있겠죠. 그런데 하나님은요. 우리를 괴롭히시려고 그런 상황을 주신 게 아니거든요.
하나님 본뜻을 예레미야 애가 보시면요. 33절 말씀 이렇게 돼요.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시며 본심이 아니라고 하시거든요." 하나님은 우리를 괴롭히시기 위해 있는 분이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어떠한 상황과 어떠한 상황 속에 있든지 간에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길이면요. 물론 우리가 봤을 때는 장애물이 있고 넘지 못할 것 같고 위험해 보이고 두려움이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요? 끌고 가시는 거예요. 조금만 참아. 조금만 견뎌내봐. 그건 너를 위한 길이야.
저는 여러분들이 이런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이 플로트위스트, 인생의 반전을 많이 경험하셨으면 좋겠어요. 이 청년의식에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 것도 되게 중요하죠. 물론 그것도 하나님께 뜻을 구해야 되죠. 그러나 여러분들이 가고 있는 그 길도요. 하나님께서 주신 그 길이고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이건 더 이상 안 될 것 같은데? 아니요. 하나님께서는 그 길을 통해 여러분들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시길 원하신다는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은 그 섭리를 믿고 따라가는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역전의 인생들을 보여주신다는 거예요. 계속 흔들어 주실 거예요.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한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주는 나의 피난처"라는 책이 있는데 코리 텐 붐이라는 분의 시라 이야기입니다. 제가 설명하기 힘들어서 영상을 가져왔거든요. 짧은 영상이 같이 한번 볼까요? 소리도 틀어주셔야 됩니다.
사실 이 얘기는 너무 극히 일부의 얘기고 진짜 얘기는 하지도 않았어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좀 나누려고 하는데요. 어쨌든 우리는 때로는 인생의 밑바닥을 치는 순간들을 맞이하곤 합니다. 또 힘들고 답답한 그 순간을 걸어갈 때도 있죠. 그래서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만 같은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냥 내 인생 주어진 대로 이렇게 살아가면 되지, 돌아가는 대로 그냥 가면 되는 거지 라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우리의 삶의 끝이 아니라는 거예요. 오히려 어쩌면 하나님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특별한 전환점이 될 수 있습니다. 왜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장 깊은 상처와 아픔조차도 하나님의 은혜를 변화시키시고 하나님의 길을 걸어가게 하시기 때문이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겪고 있는 그 어려움과 힘듦과 고난들을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계획 안에 있음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까 이 코리 여자가 뭐라고 얘기하냐면요. "어떤 어려움도 하나님의 사랑보다 크지 않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가장 어두운 구덩이에도 하나님은 가장 밝은 빛을 내 인생 가운데 보여주셨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여러분 이 고백이 여러분들의 고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고 한 가지 결단했으면 좋겠어요. "주님, 코리처럼 가장 어두운 구덩이에서도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그 가장 밝은 별을 바라보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러분 그 빛을 따라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봐 보시길 바랍니다. 이제는 자꾸 재지 마십시오. 하나님, 이 길이 맞습니까? 이게 맞습니까? 하나님 일단 가봐. 어느 길이든 간에 여러분 하나님을 붙잡고 가는 길은요. 다 사명의 길이고요. 하나님의 길이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길입니다. 대신 그 모든 상황 속에서 나의 인생을 붙잡고 계시고 섭리하고 계시고 늘 함께 하시는 그 하나님을 붙잡으십시오. 그때의 모든 상황들이 역전될 것이고 오늘 이 코리 여사처럼 우리 인생의 우연 같은 기적들이 찾아올 것이고요. 여러분들의 삶을 통하여서 빛이 더 밝아지는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겁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 오늘 바울과 같은 또 코리 여사와 같은 돗댕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길을 소망합니다.
Subject: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우리의 선택: 반전의 기회
Dear 종암제일교회,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선택하는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일 설교에서는 우리가 매일의 선택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마주하는 도전과 기회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우리의 믿음이 더욱 깊어질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를 통해 우리는 그분의 뜻을 따르는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이제 여러분 각자가 일상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그분의 뜻을 따르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매 순간의 선택이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 선택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이 되도록 힘쓰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Blessings,
종암제일교회 T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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