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교회력의 시작, 대림절 첫 주에 우리는 왜 기다리는가를 다시 붙잡았습니다. 대림절은 2000년 전 말구유에 오신 주님의 성탄만을 기다리는 절기가 아니라, 다시 오실 재림의 주를 소망하며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촛불은 소망의 촛불입니다. 빛으로 오셨고 다시 빛으로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며, 우리의 기다림이 막연한 인내가 아니라 분명한 소망의 방향을 가지도록 부르십니다.
많은 이들이 요한계시록을 두려움의 책으로 오해하지만, 실제로는 고난받는 교회를 위한 소망의 말씀입니다. 도미티안 황제의 박해 속에서 서머나와 버가모 같은 교회가 피 흘렸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을 보셨고, “속히 오리라”는 약속으로 소망을 주셨습니다. 일곱 인·나팔·대접이 가리키는 것은 단지 심판의 강도만이 아니라, 길고 깊은 고난의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이 끝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박해는 계속되고, 우리나라에는 자유가 있지만 내부의 영적 전쟁이 더 치열합니다. 식어가는 예배, 무뎌진 말씀, 부담이 된 사역은 보이지 않는 패배의 신호입니다. 이 전쟁을 이기는 열쇠는 기술이나 전략이 아니라 소망, 곧 마라나타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소망이 우리의 지향을 바로 세우고, 오늘의 선택을 정결하게 합니다.
요한은 고난의 주관자마저 하나님이심을 보았고, 동시에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을 보았습니다. 인간의 죄로 인해 고난이 왔으나, 사랑의 하나님께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새 창조를 준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내는 근거 없는 버팀이 아닙니다. 끝이 보이기에, 그리고 끝 너머의 영광이 확실하기에 견딥니다. 폴리캅이 불길 앞에서도 마라나타를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도 이 소망으로 오늘을 살며 예배하고, 기도하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하는 기다림이 곧 우리의 승리입니다.
Key Takeaways
- 1. 대림절은 두 오심의 기다림 단지 성탄만을 기다리는 절기가 아니라 재림을 향한 소망의 훈련입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이 다시 빛으로 오실 것을 기억할 때, 기다림은 방향을 얻습니다. 소망은 시간을 견디게 할 뿐 아니라 현재의 삶을 정결하게 만듭니다. 대림절의 촛불은 그 소망을 매주 몸으로 기억하게 하는 표지입니다. [02:03]
- 2. 요한계시록은 소망의 책이다 박해 속 교회에 주어진 하나님의 위로와 약속이 요한계시록의 핵심입니다. 도미티안의 압제 아래서도 주님은 교회를 잊지 않으시고 “속히 오리라”는 보증으로 붙드십니다. 상징을 과도하게 풀려 하기보다, 전체 숲에서 들려오는 소망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두려움이 아닌 인내와 충성으로 우리를 이끄는 책입니다. [08:52]
- 3. 오늘의 전쟁은 내면에서 벌어진다 법적 박해가 없더라도, 식어가는 마음은 가장 치명적인 공격입니다. 감격 없는 예배, 무뎌진 말씀, 부담이 된 사역은 영적 전쟁에서 밀리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외부의 폭풍보다 내부의 균열이 공동체를 먼저 무너뜨립니다. 그러므로 깨어 기도하며 영혼의 온도를 지키는 것이 최우선의 싸움입니다. [18:53]
- 4. 하나님의 주권과 새 창조의 소망 고난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습니다. 죄로 인한 징계의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예비하시고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이 소망이 있을 때 인내는 버티기가 아니라 향해감이 됩니다. 끝이 보이고, 끝 너머의 새 예루살렘이 보일 때, 오늘의 십자가를 다시 집습니다. [22:00]
- 5. 마라나타가 삶을 깨운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는 종말의 암호가 아니라 오늘을 변화시키는 고백입니다. 재림 소망은 우리의 예배를 진지하게, 삶을 거룩하게, 사명을 긴급하게 만듭니다. 폴리캅처럼 마지막 순간에도 배신하지 않게 하는 힘이 바로 마라나타입니다. 주님의 오심을 소망할수록 오늘의 순종은 가벼워지지 않고 깊어집니다.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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