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0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보여 준다. 시인은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는 발걸음 속에 하나님을 사모하고 예배를 갈망하는 마음을 담는다. 하나님은 비 오는 아침에도 성전을 향해 나아오는 발걸음 자체를 기뻐 받으신다. 예배는 단지 명령을 지키는 자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자가 사랑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리다.
시편은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라고 고백한다. 하나님의 사유하심은 죄가 무겁게 짓누르던 인생에서 그 무거운 짐을 제거하시는 은혜다. 죄악을 감찰하신다면 아무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기록을 아시면서도 죄인을 용서하셨다. 은혜는 사람이 무엇을 해서 얻은 대가가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죄인에게 하나님이 부어 주신 공짜의 선물이다.
십자가는 아버지가 아들을 대신 감옥에 보내는 정도의 사랑이 아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내어 주셨고, 그 사랑은 사람의 계산과 상식으로 다 담아 낼 수 없는 사랑이다. 하나님은 의인이나 선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를 주셨다. 그러므로 은혜를 안다는 것은 십자가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하면 가까운 사람의 수고도, 예배를 위해 섬기는 손길도, 매일 허락된 삶도 권리처럼 여겨진다. 하나님은 감사가 사라진 입술을 다시 돌이켜, 불평과 정죄가 아니라 찬송과 감사로 하나님을 높이게 하신다. 시편은 깊은 데서 부르짖는 죄인에게도 하나님이 주님과 아버지가 되심을 보여 준다.
시인은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 간절히 여호와와 그 말씀을 기다린다. 하나님은 자녀의 문제와 인생의 문제보다 더 근본적인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셨다. 하나님은 풍성한 구속을 베푸시며, 이스라엘을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신다. 참된 예배는 바로 그 은혜를 잊지 않고, 받은 사랑 때문에 하나님을 보고 싶어 성전에 올라가는 마음에서 나온다.
Key Takeaways
- 1. 용서는 무거운 죄짐을 제거한다 하나님의 용서는 가벼운 위로나 막연한 기분이 아니다. 죄가 사람을 끊임없이 누르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게 하는 실제적인 무게를 하나님이 제거하시는 사건이다. 용서받은 사람은 자신의 의로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유하심 때문에 하나님 앞에 담대히 선다. [46:19]
- 2. 십자가는 결코 당연하지 않다 십자가는 죄인이 받을 형벌을 하나님의 아들이 대신 받으신 사건이다. 하나님은 선한 사람만이 아니라 아직 죄인 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아들을 내어 주셨다. 은혜를 깊이 안다는 것은 십자가를 익숙한 종교 언어로 소비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53:12]
- 3. 은혜는 권리가 되는 순간 흐려진다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는 마음은 사람의 섬김과 일상의 공급까지도 불평의 대상으로 바꾼다. 감사가 사라진 자리에서는 받은 것이 많아도 은혜를 보지 못한다. 하나님은 입술이 불만과 정죄가 아니라 찬송과 감사로 쓰이기를 원하신다. [1:06:21]
- 4. 파수꾼보다 주님을 더 기다린다 시편의 기다림은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밤을 지키는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 절박한 기다림이다. 하나님은 깊은 심연에 있는 영혼에게도 말씀과 구속의 약속을 붙들게 하신다. 구원받은 영혼은 상황의 해결만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기다린다. [58:04]
- 5. 예배는 받은 사랑의 응답이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설렘은 의무감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용서가 마음에 실제가 될 때, 하나님을 보고 싶어 성전으로 향하게 된다. 하나님은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삶으로 찬양하는 참 예배자를 기뻐하신다. [1: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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