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는 고난 속에 흩어져 사는 나그네들에게 먼저 “너는 누구냐”를 묻는다. 나그네의 가장 큰 아픔은 고향도, 터전도, 소속도 잃어버린 데 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창세 전부터 미리 아셨고,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셨고, 그리스도의 피로 새 생명을 얻게 하셨다. 세상이 무시하고 조롱해도 하나님은 그들을 택하신 존재, 존귀한 존재로 부르신다.
세상은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아서 결국 시들고 무너진다. 악독, 기만, 외식, 시기, 비방은 허무한 세상에서 자기 힘으로 살려는 모습이다. 베드로는 그런 삶을 버리고 갓난아이처럼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한다. 새 생명을 받은 존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라야 허무의 세계에 끌려가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버림받으셨으나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은 산돌이시다. 산돌이신 그리스도는 죽음에서 부활하셨고, 그분에게 나아가는 자들은 신령한 집으로 세워진다. 하나님은 터전 없는 나그네에게 부활의 생명으로 사는 새 터전을 주시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신령한 제사장으로 세우신다.
베드로는 이 신분을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밝힌다. 하나님의 소유라는 말은 하나님이 책임지고 인도하고 보호하신다는 확정된 위로다. 하나님은 어둠에서 빛으로 불러낸 백성에게 아름다운 덕, 곧 전적인 은혜로 이루신 구원의 능력을 선포하는 임무를 맡기신다. 용서받은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는 임무가 주어진 것처럼, 부르심은 일을 맡기시는 부르심이다.
거룩한 백성의 임무는 말만이 아니라 거룩한 행실로 증명된다.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고, 비방하는 자들 앞에서도 선을 행하며, 세상의 제도 안에서 하나님의 질서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복음의 길이 된다. 자유는 악을 가리는 핑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종처럼 사는 자유다.
고난은 그 거룩한 행실이 드러나는 자리다.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셨지만 욕을 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셨다. 요셉, 다윗, 다니엘, 욥의 길도 억울함을 하나님 앞에서 해석한 길이었다. 하나님은 애매한 고난을 헛되게 두지 않으시고, 믿음을 정금처럼 단련하여 마침내 칭찬과 존귀와 영광으로 바꾸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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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 Takeaways
- 1. 정체성이 고난을 견디게 한다 [03:27] 하나님의 택하심은 세상의 평가가 무너질 때 더 분명해진다. 나그네의 신분은 세상에서는 불안정해 보여도, 하나님 앞에서는 미리 아신 자의 신분이다. 고난은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하나님의 소유라는 대답을 붙들게 한다. [03:27]
- 2. 신령한 젖으로 자라야 한다 [10:49] 새 생명은 세상의 욕망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허무한 세계를 이기는 생명력이며, 거룩한 존재를 자라게 하는 양식이다. 악독과 기만을 버리는 힘은 의지만으로 나오지 않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데서 나온다. [10:49]
- 3. 부르심에는 반드시 임무가 있다 [25:47] 하나님은 용서만 하시고 끝내지 않으신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은 자에게는 아름다운 덕을 선포할 임무가 주어진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신분은 추상적인 이름이 아니라, 각자에게 맡기신 은사와 사명으로 확인된다. [25:47]
- 4. 선한 행실은 복음의 방식이다 [33:12] 비방을 받는 자리에서 선을 행하는 모습은 세상의 방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육체의 소욕을 따르지 않고 영의 소욕을 추구하는 삶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드러낸다. 하나님은 그 선행을 통해 비방하던 자들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신다. [33:12]
- 5. 애매한 고난은 아름다울 수 있다 [46:59] 그리스도의 고난은 보복하지 않고 공의의 하나님께 맡기는 길이었다. 억울한 환경은 하나님의 부재를 뜻하지 않으며, 믿음을 정금처럼 단련하는 자리일 수 있다. 하나님은 고난 가운데서도 자기 백성을 목자와 감독 되신 그리스도에게 더 깊이 돌아오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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