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6장 15절부터 18절은 바울의 마지막 당부를 전한다. 고린도전서는 사랑, 부활, 은사, 직분, 교회에 대한 주옥같은 말씀을 담고 있다. 그런데 바울은 그 큰 편지의 끝에서 어마어마한 말을 붙이지 않는다. 바울은 그저 “이런 사람들을 알아주라”고 한다.
고린도 교회는 참 시끄러운 교회였다.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하며 다투었고, 은사 문제로 다투었고, 성찬 자리에서도 갈등이 있었다. 그 밑바닥에는 “나 좀 알아줘”라는 마음이 있었다. 더 깊이 들어가면 “나만 알아줘”라는 마음이 있었다. 어린아이가 동생이 태어난 뒤 “나도 좀 사랑해 줘”라고 몸으로 말하듯, 어른도 훨씬 고상한 말로 같은 투정을 부린다. “이 부분은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내 말이 맞잖아요”, “나는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 같은 말 속에도 자기 존재를 증명하고 싶은 갈망이 숨어 있을 때가 많다.
바울은 그런 마음을 향해 어른답게 굴라고만 하지 않는다. 바울은 “알아주라”고 한다. 알아준다는 말은 그냥 존재를 확인하는 정도가 아니다. 그것은 인정하고, 존중하고, 감사하는 일이다. 상대가 거기 있다는 것을 보고, 그 수고가 가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사람을 통해 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것이다.
바울은 먼저 스데바나 같은 첫 열매, 곧 처음 믿음의 자리에 들어온 사람들을 알아주라고 한다. 처음 교회에 온 사람은 서툴고 어색하다. 화장실도 찾기 어렵고, 찬송도 낯설고, 성경도 한참 찾아야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에게 필요한 말은 “이것도 몰라요?”가 아니라 “잘 오셨습니다, 애쓰셨습니다”이다.
바울은 또 섬기기로 작정한 사람들을 알아주라고 한다. 예배당 문을 열고, 청소하고, 주방에서 섬기고, 찬양하고, 방송실과 재정부실에서 이름 없이 수고하는 손길들이 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이 사람을 격려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믿음의 공동체는 서로를 축복하고 위로할 때 따뜻해진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부족한 것을 채워준 사람들을 알아주라고 한다. 부족함을 볼 수 있는 눈은 사랑에서 나온다. 목마른 사람에게 물 한 방울이 단 이슬과 같듯, 절실할 때 받은 도움은 오래 남는다. 바울은 “알아주라”는 짧은 말 안에 믿음의 길, 사랑의 길, 평화의 길을 담아 고린도전서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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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 Takeaways
- 1. 사랑의 첫걸음은 알아줌이다 알아준다는 것은 단순히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 아니다. 바울이 말한 알아줌은 인정하고, 존중하고, 그 사람을 통해 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자리까지 간다. 사랑은 큰 말보다 먼저 상대의 수고와 외로움과 어색함을 알아보는 눈에서 시작된다. [38:40]
- 2. “나만 알아줘”가 다툼을 만든다 고린도 교회의 갈등 밑바닥에는 신학적 논쟁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내가 맞다”, “내 은사가 더 중요하다”, “내 편이 더 낫다”는 말 속에는 자기 존재를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자기 인정의 갈망이 사랑보다 앞서면, 옳은 말도 사람을 세우지 못하고 공동체를 시끄럽게 만든다. [28:08]
- 3. 초신자의 어색함을 귀히 보라 처음 믿음의 자리에 들어온 사람은 모든 것이 낯설 수 있다. 찬송도, 성경도, 식사 자리도, 교회의 작은 문화도 쉽게 넘을 수 없는 문턱이 된다. 바울이 첫 열매를 알아주라고 한 말은, 서툰 믿음 안에 담긴 용기를 먼저 보라는 뜻이다. [41:21]
- 4. 이름 없는 섬김을 찾아보라 교회 안의 많은 수고는 소리 없이 지나간다. 문을 열고, 청소하고, 음식을 준비하고, 방송을 맡고, 기도로 받치는 손길은 드러나지 않지만 공동체의 예배를 가능하게 한다. 성숙한 공동체는 박수 받을 사람만 보는 곳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자리의 충성을 일부러 찾아 감사하는 곳이다. [43:37]
- 5. 부족함을 채움은 사랑의 눈이다 누군가의 부족함은 사랑이 없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절실한 때에 건네진 작은 도움은 목마른 사람에게 단 이슬 같은 물 한 방울이 된다. 신앙의 기억은 큰 선물보다 가장 막막한 순간에 길을 보여주고 빈자리를 채워준 사람들을 오래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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