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3장부터 25장은 마지막 때를 앞에 두고 무엇을 예비해야 하는지를 정면으로 세운다. 본문은 당장 유익해 보이는 카피와 리프로덕션에 인생을 걸지 말고, 불심판 뒤에도 남을 것을 준비하라고 부른다. 세상 흐름에 같은 편을 먹으면 욕도 덜 먹고 편할 수 있지만, 예수님은 믿음으로 사는 자가 환난을 당할 것이라고 이미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23장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모습을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그들은 말은 잘했지만 행동은 엉터리였고, 자기도 천국에 들어가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도 못 들어가게 막았다. 특히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명의 코이노니아를 자기 의와 정죄의 도구로 전락시켰다. 십일조와 나눔은 하늘 가족이 생명을 나누는 기쁨이어야 하는데, 의무감과 인정 욕구로 행하면 안 한 것만 못한 폐단이 된다.
마태복음 24장은 교회가 환난과 미혹과 사랑이 식어지는 현실을 지나게 된다고 말한다. 마귀는 거짓 선지자와 적그리스도와 예수님처럼 보이는 가짜를 통해 구원받은 사람까지 흔들려고 한다. 그러므로 구원받았다고 넋 놓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자신을 성찰하고 순종하는 삶이 필요하다. 사람의 말은 결국 “나는 잘했고 너는 잘못했다”로 흘러가기 쉽지만, 쉐마 이스라엘의 부르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한다.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 달란트, 양과 염소 비유는 겉으로 같은 자리에 있어도 마지막은 달라진다고 보여준다. 같은 장소, 같은 모습, 같은 종교적 분위기 속에 있어도 중심이 진실한 사람과 가짜로 사는 사람은 갈라진다. 주님은 연약함과 못남은 아시고 품으시지만, 없는데 있는 척하고 못하는데 잘하는 척하는 가짜 인생은 받으실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썩을 육이 영원한 영으로 변화되는 유일한 길이시다. 영원한 하나님과 하나 되어야 영원할 수 있고, 죄악 덩어리인 인간은 중보자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과 하나 됨을 누린다. 중심이 진실하게 십자가의 은혜를 붙들면, 겉사람의 부족함 속에서도 속사람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의 복락에 연결된다.
불심판의 이미지는 물질로 붙들 수 있는 모든 것이 풀어지고 사라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원자의 힘도 온도가 올라가면 흩어지듯, 물질과 성취와 종교적 업적은 마지막 불 앞에서 남지 않는다. 하나님의 본성인 사랑이 중심에 피어나고,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생명의 융합이 일어날 때, 그 사랑만 마지막까지 남는다.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다는 말씀은 단지 성전 역사 속 사건만 가리키지 않는다. 거룩한 곳은 마음이어야 하고, 그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서 있어야 한다. 마음에 말씀이 없고 욕심과 썩어질 우상이 가득한데도 아무 불편이 없다면, 그때가 참으로 위험한 때다.
말씀에 순종한 사도 공동체는 예루살렘 환난 전에 버리고 떠남으로 살아남았다. 집과 땅덩어리가 재산이던 시대에 산으로 도망하라는 말씀은 자기 포기 없이는 순종할 수 없는 말씀이었다. 현실이 아까워 붙들린 사람은 현실과 함께 무너졌고, 말씀을 붙든 공동체는 신앙을 오늘까지 전했다.
나됨의 복은 멋대로 사는 자유가 아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몸을 내어주신 주님의 사랑을 알 때, 나됨은 너됨을 존중하는 삶으로 나타난다. 연약한 사람을 손가락질하지 않고 부끄러움을 가려주며,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는 충성된 종의 길이 열린다. 성령 충만은 붕 뜨는 엑스터시가 아니라 가슴이 뜨거워져 미움과 시기와 질투가 녹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남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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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 Takeaways
- 1. 불심판 뒤에 남을 것을 준비하라 [41:21] 불심판은 겁을 주는 그림이 아니라, 무엇이 참으로 남는지를 드러내는 하나님의 분별이다. 물질로 된 것은 온도가 올라가면 풀어지고, 업적과 인정과 종교적 모양도 중심의 사랑이 없으면 사라진다. 마지막을 준비한다는 것은 더 많은 일을 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인 사랑이 중심에 실제로 피어나고 있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41:21]
- 2. 은혜는 낫띵에게 임한다 [49:11] 은혜는 자기가 잘났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당연한 보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람이 “낫띵”이 될 때, 은혜 아니면 설 수 없다는 진실이 열린다. 바리새인의 자기 의는 하나님의 선물을 막았고, 비워진 중심은 십자가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자리가 되었다. [49:11]
- 3. 생명의 코이노니아를 더럽히지 말라 [50:02] 코이노니아는 단순한 교제나 회비 납부가 아니라, 하늘 가족이 생명을 나누는 아름다운 자리다. 십일조와 헌신도 공동체를 살리는 기쁨이 될 때 생명의 나눔이 된다. 그러나 인정받기 위해, 정죄하기 위해, 자기 의를 드러내기 위해 행하면 가장 아름다운 것이 가장 추한 것으로 전락한다. [50:02]
- 4. 나됨은 너됨을 존중한다 [01:07:22] 나됨은 자기 마음대로 사는 개인주의가 아니라, 십자가 사랑 안에서 참 자기를 회복하는 은혜다. 참된 나됨을 누리는 사람은 곁에 있는 사람의 너됨을 함부로 짓밟지 않는다. 연약함을 보았을 때 손가락질하지 않고 부끄러움을 가려주며, 자기 것을 나누어 세우는 삶이 깨어 있는 삶이다. [67:22]
- 5. 성령 충만은 가슴의 불이다 [01:09:45] 성령 충만은 신비한 힘을 과시하거나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보는 상태가 아니다. 성령의 불은 마음속 미움, 시기, 다툼, 질투를 녹이고 하나님의 본성인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남긴다. 뜨거워진 가슴은 억지 봉사가 아니라 저절로 피어나는 사랑과 용서와 희생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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