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0편은 성전으로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이지만, 밝은 여행의 들뜸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시편 기자는 환란과 화와 전쟁 같은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이 땅의 삶은 영원히 머무를 집이 아니라 잠깐 나온 소풍 같고, 그리스도인은 천국을 향해 올라가는 순례자다. 순례자의 마음은 가나안에 정착했던 이스라엘에게도 절기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기억한다. 하나님은 이 땅이 영원한 처소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신다.
시편 기자의 환란은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온다. 깨어진 세상은 하나님 없이도 성공하고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고, 진리와 정의를 자꾸 왜곡한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그런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일 자체가 고통스럽고 눈물 나는 일임을 드러낸다. 순례자의 기도는 사람에게 다 설명하고 해명해서 문제를 풀려 하지 않고, 하나님께 생명을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는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에도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분이다. 사람은 기대했다가 상처를 주고 낭패를 안길 수 있지만, 하나님은 환란 가운데 부르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시편 기자는 악한 혀와 기만하는 자들을 직접 갚으려 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긴다. 하나님의 화살과 로뎀나무 숯불의 이미지는 하나님이 악을 대충 다루지 않으시고 완전하게 다루심을 보여 준다.
매색과 게달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는 세상 한가운데 머무는 고통을 보여 준다. 시편 기자는 화평을 원하지만 상대는 싸우려 한다고 탄식한다. 화평을 구하는 삶은 때로 손해 보는 것 같고, 말씀대로 살려 할수록 더 억울해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순례자의 결론은 달라지지 않는다. 순례자는 샬롬이 없는 세상에서 자기 힘으로 싸우지 않고 하나님께 문제를 내어놓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시편 120편의 고통을 친히 겪으셨다. 예수님은 겟세마네의 고난과 십자가의 비난 속에서도 아버지께 자신을 맡기셨고, 욕을 당하셔도 맞대어 욕하지 않으셨다. 십자가는 하나님과 화평이 없던 사람들에게 진짜 샬롬을 열어 주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능력은 환란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샬롬의 주인이신 예수님께 모든 문제를 가져갈 때 주어진다.
Key Takeaways
- 1. 순례자는 이 땅에 정착하지 않는다 순례자의 삶은 현재의 집, 형편, 성공을 영원한 것으로 붙들지 않는다. 하나님은 절기마다 성전으로 올라가게 하심으로 이스라엘이 본향을 기억하게 하셨다. 인생이 잠깐 나온 소풍이라는 사실은 삶을 가볍게 만들려는 말이 아니라,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지 바로잡는 말이다. [36:18]
- 2. 하나님은 환란의 부르짖음을 들으신다 시편 기자의 부르짖음은 멀리 계신 것 같은 하나님께 삶의 현실을 크게 아뢰는 기도다. 사람에게 말하는 것은 잠시 속을 시원하게 할 수 있지만, 사람은 생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하나님은 모든 문제를 즉시 원하는 방식으로 없애시지 않을 때에도, 부르짖는 자의 삶에 응답하시는 분이다. [44:45]
- 3. 거짓된 혀는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기만과 비난의 말은 한 사람의 마음과 평판을 깊이 찌를 수 있다. 시편 기자는 자기 손으로 갚으려 하지 않고, 악을 공의롭게 다루실 하나님께 맡긴다. 복수를 내려놓는 일은 억울함이 작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더 정확하고 완전하게 판단하심을 믿기 때문에 가능하다. [56:16]
- 4. 샬롬은 싸움 없는 환경만이 아니다 시편 기자는 화평을 원해도 상대가 싸우려 하는 현실을 숨기지 않는다. 샬롬은 모든 관계가 편안해지는 상태만을 뜻하지 않고, 싸움의 자리에서도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평강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바로 그 샬롬을 이루셨다. [1:03:31]
- 5. 예수님께 모든 문제를 가져가라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과 비난을 피하지 않으시고 아버지께 맡기셨다. 십자가의 사랑은 삶의 문제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면서도 그 문제보다 더 깊은 평화를 준다. 직장과 관계와 마음의 전쟁 같은 모든 문제는 결국 샬롬의 주인이신 예수님께 가져가야 한다. [1: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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