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9장 19절부터 29절은 하나님의 주권 앞에서 사람의 질문을 바꾸어 놓는다. 본문은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라는 질문 속에 숨어 있는 책임 회피와 교만을 드러낸다. 속도위반 티켓의 기억은 사람이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왜 나만 잡았느냐”라고 변명부터 찾는 모습을 보여 준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도 같은 길을 걸었다. 아담은 하와를 탓했고, 하와는 뱀을 탓했으며, 죄가 들어오자 책임은 전가되기 시작했다.
바울은 먼저 피조물의 자리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바울의 책망은 고통 속에서 흘리는 정직한 눈물이 아니라, 피조물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하나님을 심문하는 태도를 향한다. 믿음은 무릎을 꿇고 질문하는 것이지만, 교만은 팔짱을 끼고 하나님을 피고석에 세우는 것이다. 토기장이와 진흙의 비유는 “한 덩이”에서 귀히 쓸 그릇과 천히 쓸 그릇이 나온다는 사실을 붙든다. 긍휼의 그릇은 더 좋은 재료였기 때문에 된 것이 아니라, 토기장이의 권한과 은혜로 빚어진 것이다.
하나님은 주권으로 인간의 책임을 지워 버리지 않으신다. 요셉의 형들은 악을 선택했지만, 하나님은 그 악조차 선으로 바꾸어 많은 생명을 구원하셨다. 하나님의 주권은 죄의 변명이 아니라, 인간의 악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기지 못한다는 소망이다. 본문은 상처가 내 잘못이 아닐 수 있어도, 그 상처가 인생의 주인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깨진 유리조각을 버린 책임은 다른 사람에게 있어도, 발에 박힌 유리를 빼고 치료받는 일은 감당해야 할 몫이다.
바울은 또한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보게 한다. 하나님은 진노의 그릇을 즉시 멸하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신다. 바로에게 여러 번 돌이킬 기회가 주어졌지만, 바로는 하나님의 인내를 회개의 기회가 아니라 죄를 반복하는 기회로 사용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죄 가운데 머물라는 허락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돌아오라고 열어 놓으신 은혜의 문이다.
긍휼의 그릇은 받은 긍휼을 흘려 보내는 통로다. 호세아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부르시고, 사랑받지 못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신다. 남은 자는 자기 힘으로 버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붙들어 남겨 주신 사람이다. 그러므로 긍휼의 그릇은 “저 사람은 소망이 없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긍휼의 그릇은 “나 같은 사람도 은혜를 받았으니 저 영혼에게도 소망이 있다”라고 고백하며, 가정과 교회와 삶의 자리에서 멈춰 서고, 다가가고, 손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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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 Takeaways
- 1. 피조물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라 [07:31] 바울은 질문 자체를 막지 않고, 질문하는 마음의 자리를 묻는다. 믿음의 질문은 하나님을 심문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탄식이다. 하나님의 계획이 다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성품은 신뢰할 수 있다. 피조물의 자리는 작아지는 자리가 아니라, 선하신 창조자의 손 안에서 다시 바로 서는 자리다. [07:31]
- 2. 오래 참으심은 회개의 문이다 [18:31] 하나님의 인내는 죄를 괜찮다고 인정하시는 침묵이 아니다. 하나님은 즉시 심판하실 수 있지만, 죄인이 돌이키도록 시간을 주신다. 바로처럼 그 시간을 반복되는 죄의 핑계로 쓰면 인내가 도리어 더 무거운 책임이 된다. 은혜의 문이 열려 있을 때 미루던 순종과 사과와 돌이킴은 오늘의 일이어야 한다. [18:31]
- 3. 받은 긍휼은 흘러가야 한다 [25:42] 긍휼의 그릇은 전시해 놓은 장식품이 아니다. 하나님께 받은 긍휼은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도록 맡겨진 은혜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긍휼은 감정에서 멈추지 않고, 멈춰 서고, 가까이 가고, 상처를 싸매는 행동이 되었다. 가정과 교회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긍휼이 흘러가지 않는다면, 받은 은혜는 삶의 길을 아직 찾지 못한 것이다. [25:42]
- 4. 남은 자는 붙들린 사람이다 [29:07] 남은 자는 자기 힘으로 끝까지 버틴 강한 사람이 아니다. 산불 뒤 검게 탄 땅에서 새싹이 올라오듯, 하나님께서 생명을 남기시기 때문에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다. 넘어짐과 실망과 상처가 있었어도 예배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은 붙드시는 은혜의 증거다. 그래서 긍휼의 그릇은 다른 영혼을 쉽게 포기하지 않고, “저 사람에게도 소망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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