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11장 16-23절을 따라, 가나안 정복이 한순간의 일이 아니라 길고 무거운 시간이었다는 것을 나눴습니다. 남쪽 한락산에서 북쪽 헤르몬 산 아래 바알갓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은 산지와 평지, 아라바와 네겝을 포괄적으로 점령했습니다. 전쟁은 “오랫동안”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들의 완악함을 그대로 두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죄를 짓게 하셨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굳게 닫은 마음을 끝까지 허용하셨다는 뜻입니다. 완악함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갈 틈을 없애는 상태입니다. 말씀의 씨가 떨어져도 땅이 단단하면 새가 와서 빼앗아가듯, 마음이 굳어 있으면 진리가 스며들지 못합니다.
출애굽기의 바로가 그 전형입니다. 재앙을 보아도 마음을 굽히지 않자 결국 멸망으로 갔습니다. 반면 여호수아 9장의 기본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여리고와 아이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듣고 두려워했습니다. 이 두려움은 그들을 움직이게 만들었고, 어설픈 방식이었지만 화친을 선택하게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묻지 않은 잘못은 분명하지만, 기본의 마음이 완악하지 않았다는 점은 주목해야 합니다. 마음이 부드러우면 길이 열리고, 살아남는 지혜가 생깁니다.
우리에게 적용하면, 완악함은 단지 모든 말씀을 거부하는 태도만이 아닙니다. 위로되는 구절만 받아들이고 부담이 되는 말씀은 밀어내는 선택적 순종도 완악함입니다. 말씀을 이용하려는 태도는 우리를 변화로 이끌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 부담스럽더라도 그 앞에 무릎 꿇고 씨름할 때, 그 말씀이 우리를 고치고 부수고 다시 세웁니다. 긴 전쟁 끝에 평안이 온 것처럼, 말씀 앞에서의 긴 씨름 끝에 우리의 삶에도 평안과 변화가 옵니다. 오늘 우리 마음의 흙을 갈아엎어, 말씀이 들어갈 틈을 내고, 순종의 길을 다시 걷기를 구합시다.
Key Takeaways
- 1. 완악함은 말씀의 틈을 막는다 말씀이 스며들 자리를 마음이 스스로 봉쇄하면, 씨는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쉽게 빼앗깁니다. 단단한 길가 같은 심령은 진리를 들어도 살아있는 접촉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말씀의 능력보다 마음의 상태가 결과를 좌우합니다. 그래서 먼저 마음의 흙을 부드럽게 갈아엎는 일이 필요합니다. [13:41]
- 2. 하나님은 완악함을 허용하신다 하나님은 죄를 짓게 만들지 않으시지만, 굳게 닫은 마음을 때로는 그대로 두십니다. 바로처럼 표적과 징조를 보고도 굽히지 않으면, 결국 그 선택의 무게를 스스로 감당하게 됩니다. 경고를 들을수록 더 부드러워지거나 더 단단해지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은혜의 때에 마음을 여는 것이 지혜입니다. [10:29]
- 3. 두려움이 지혜가 된 기본 기본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을 듣고 ‘그냥’ 버티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이 그들을 움직였고, 어설픈 선택 속에서도 생명의 길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묻지 않은 과오는 과오지만, 기본의 부드러운 마음은 길을 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은 도망이 아니라 지혜의 문이 될 수 있습니다. [16:05]
- 4. 위로만 고르는 신앙도 완악 말씀을 선별적으로 취하면 결국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부담스러운 구절 앞에서 멈출 때, 우리의 성장은 거기서 정지됩니다. 불편한 말씀과 씨름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깎고 다듬어 내실을 세우십니다. 위로와 도전이 함께 들어올 때 비로소 온전한 순종이 자랍니다. [18:38]
Youtube Chap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