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마지막 장에서 바울은 앞선 모든 주제를 사랑으로 거둔다.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라는 한 문장이 이 편지의 결론이자 방향이다. 본문은 사랑을 행동의 한 옵션이 아니라 삶의 자리로 놓는다. “사랑 안에서”가 핵심이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죽듯, 그리스도인의 말과 생각과 계획과 태도는 사랑의 바다를 벗어나는 순간 생명력을 잃는다. 그래서 바울의 동사는 단순한 “행하라”가 아니다. 사랑이 일을 되게 하고, 사랑이 일을 이루게 하라는 뜻이다. 일회적이 아니라 계속 그렇게 되어가라는 부름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던진 “사랑하라. 그리고 원하는 것을 하라”는 말이 여기서 자리를 잡는다. 이것은 무분별의 허가증이 아니다. 그 사랑이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 곧 주님의 사랑을 빼닮은 사랑이라면, 그 사랑은 열망과 실천을 올바르게 이끈다. 참사랑 아래서는 선을 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사랑의 힘이 크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사랑을 “완성”이라 부른다. 그래서 사랑은 무법이 아니다. 사랑은 율법이 의도한 바를 이룬다. 바로 앞 구절의 “깨어 있으라, 굳게 서라, 용기 있으라, 강건하라”도 사랑과 결합될 때만 빛난다. 사랑이 없으면 그 힘은 교만이나 폭력으로 기울기 쉽다.
현실의 장에서는 사랑이 더 어려운 길을 연다. 복수의 통쾌함을 찌르는 콘텐츠에 절제 훈련으로 거리를 두는 선택은, 세상의 빠른 해결을 거부하고 사랑의 더 나은 방식을 찾겠다는 결단이다. 이상한 나라로 들어간 앨리스처럼, 사랑은 사람을 미지의 세계로 이끈다. 사랑하지 않으면 겪지 않을 인내와 고통을 자청하게 만든다. 그래도 그 길이 그리스도인의 길이다. 지금 이 땅에 예수께서 계셨다면 하셨을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정체성 때문이다. 그 일은 결국 사랑이다.
사랑은 관계를 바꿀 뿐 아니라 사람 자체를 바꾼다. 스무 살 아들을 안아주고 사랑을 말한 아버지의 작은 실천이 아들을 바꾸고 아버지도 바꾸었다. 그 작음이 위대한 까닭은 그 방향이 그리스도의 사랑과 닮았기 때문이다. 큰일이더라도 사랑 없이 하는 일보다, 사랑으로 하는 작은 일이 교회를, 가정을, 욕망의 방향을 바르게 세운다. 사랑하라. 그리고 원하는 것을 하라. 사랑이 욕망을 조정하고, 주님의 기쁨과 공동체의 덕을 세우는 일을 이루게 한다.
Key Takeaways
- 1. 사랑 안에서 모든 일이 되게 사랑은 행동의 장식이 아니라 환경이다. 사랑이 일을 되게 하고, 사랑이 일을 이루게 해야 한다. 물고기가 물을 떠날 수 없듯, 신자의 생각과 계획과 태도는 사랑의 바다를 벗어나면 생기를 잃는다. 사랑을 삶의 지속적 원리로 두는 것, 그게 부름이다. [06:24]
- 2. 참사랑은 욕망을 바로잡는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처럼 “사랑하라. 그리고 원하는 것을 하라”는 방임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욕망의 나침반이 되면, 사람은 선을 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욕망은 억눌림이 아니라 정향을 통해 새 방향을 얻는다. 사랑이 깊을수록 원하는 바가 달라진다. [07:51]
- 3. 사랑은 율법을 완성한다 사랑은 법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율법이 의도한 바를 채운다. 그래서 힘과 용기가 사랑과 결합될 때만 복음적이다. 사랑 없는 강건함은 교만과 폭력으로 스며들기 쉽다. [08:29]
- 4. 작은 사랑이 방향을 바꾼다 스무 살 아들을 안아준 한 번의 포옹이 관계의 공기를 바꾸고, 아버지 자신을 바꾸었다. 사랑은 큰 사건보다 방향을 바꾼 작은 선택 속에서 깊게 일한다. 작아 보여도 그리스도의 사랑과 닮은 꼴이면 위대하다. 작은 일에서 사랑을 선택할 때 삶 전체가 바로 선다. [14:19]
- 5. 사랑은 어려운 길을 연다 복수의 통쾌함을 끊고 절제로 멈춘 선택은 사랑의 더 나은 방식을 찾는 출발선이다. 사랑은 사람을 미지의 세계로 데려간다. 인내와 고통을 피하지 않게 만들고, 그 길에서 정체성을 새긴다. 빠른 해소 대신 십자가의 길을 택하게 한다.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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