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을 떠올리면 기쁨과 설렘이 먼저 떠오르지만, 처음 성탄을 가장 먼저 맞이한 요셉의 마음은 그와 달랐습니다. 그의 현실은 혼란과 두려움이었고, 사람들의 시선, 율법과 신앙의 무게, 가문의 체면, 생계의 부담, 배신감과 상처가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요셉을 “의로운 사람(디카이오스)”이라 부릅니다. 그 의로움은 착함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율법을 무시하지 않되, 마리아를 드러내지 않고 지켜주려는 마음, 곧 진리를 붙들면서도 사람을 살리고 보호하려는 결단이었습니다. 그 밤 천사는 요셉의 현실 문제들을 직접 해결해주지 않았습니다. 대신 네 가지 말씀으로 두려움의 뿌리를 겨냥했습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라 하심으로 정체성을 회복시키시고, “성령으로 잉태”된 일임을 밝혀 하나님의 주권을 보여 주셨으며,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는 명령으로 사명을 분명히 하시고,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된 “임마누엘”을 선포하여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확증하셨습니다. 해결책이 아니라 말씀 자체가 요셉의 내면을 재정렬한 것입니다.
요셉의 반응은 지체 없는 순종이었습니다. 두려움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현실은 여전히 거칠고 계산은 불리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말씀의 확신이 두려움의 무게를 능가할 만큼 커졌기에, 마리아를 데려왔고 아들을 낳기까지 절제하며 예수를 이름 지었습니다. 성탄은 그래서 축제의 계절이기 이전에, 말씀 앞에서 결단과 순종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말씀은 두려움을 즉시 없애주지는 않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확신을 낳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듣는 자리에 머물러야 합니다. 듣다 보면 이해가 열리고, 이해가 열리면 순종이 가능합니다.
이 성탄에 “나의 마리아”는 누구입니까? 깎아내리기보다 덮어주고, 법을 세우면서도 사람을 살리는 자리, 화해를 먼저 여는 가정, 정직을 선택하는 일터, 공동체에서 회복을 돕는 손길, 복음을 전해야 할 이웃과 민족 앞에서 머뭇거림을 멈추는 결단. 요셉처럼 말씀을 듣고, 이해하고, 즉각 순종함으로 성탄의 깊이를 살아내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Key Takeaways
- 1. 성탄은 두려움에서 시작된다 성탄을 가볍게 소비하는 순간, 하나님의 깊은 계획을 놓칩니다. 요셉의 시작은 기쁨이 아니라 밤잠을 잃는 두려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두려움 한가운데 찾아와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성탄은 우리의 현실을 피하도록 도피시키는 날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다시 믿도록 부르시는 날입니다. [14:01]
- 2. 의로움은 율법을 지키며 보호한다 요셉의 의로움은 율법을 무시하거나, 사람을 희생시키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법을 존중하면서도 마리아를 드러내지 않고 지키려 했습니다. 진리가 사람을 살리는 방향으로 적용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가 드러납니다. 우리도 원칙을 굽히지 않되, 그 원칙으로 이웃을 살리는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06:15]
- 3. 하나님은 정체성과 사명으로 응답하신다 하나님은 문제의 표면보다 뿌리를 다루십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라는 부르심으로 누구인지를, “예수라 하라”로 무엇을 위해 사는지를 새겨 주십니다. 정체성과 사명이 재정렬될 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아도 마음의 질서는 바뀝니다. 두려움은 사라지기보다, 그 의미가 재배치됩니다. [15:49]
- 4. 이해가 순종을 낳고 두려움을 넘는다 요셉은 모든 해답을 받은 뒤가 아니라, 말씀을 이해한 즉시 순종했습니다. 두려움의 무게가 줄어서가 아니라, 말씀의 확신이 더 무거워졌기 때문입니다. 순종은 감정의 평안이 완성된 후의 선택이 아니라, 확신이 생긴 즉시의 결단입니다. 말씀을 듣고, 이해하고, 곧바로 움직이십시오. [24:08]
- 5. 당신의 ‘마리아’를 품으라 우리 곁엔 지켜주고 덮어야 할 ‘마리아’가 있습니다. 가정의 화해, 일터의 정직, 교회 공동체의 회복, 복음을 기다리는 이웃이 그 마리아일 수 있습니다. 원칙을 세우되 사람을 살리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리에서 누군가의 방패가 되십시오. [3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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