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장 1절부터 11절은 예수께서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에서 행하신 처음 표적을 보여준다. 요한은 이 표적이 단순한 miracle이 아니라 sign이라고 말한다. 표적은 개인 유익을 위해 과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려고 주어진다.
요한은 예수의 제자들이 “크리스티아누스”, 곧 그리스도를 쫓는 자들임을 드러낸다. 주님께서 “나를 따르라” 하셨다면, 따르는 삶은 말로만 Christian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주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삶이다. 가나의 첫 표적은 주를 따르는 자가 어떻게 따라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첫째는 순종이다. 예배도 귀하지만,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는 것은 순종이다.
마리아의 말은 이 표적의 문을 연다. 예수께서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하셨지만,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말한다. 요한은 여기서 육신의 아들에게 요구하는 어머니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마리아의 반응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99.9퍼센트가 아니라 100퍼센트의 순종을 원하신다. 사울이 아말렉을 “almost” 순종했을 때 폐함을 받은 것처럼, 남겨 둔 작은 불순종은 결국 마음의 왕좌를 드러낸다.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은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한 순종이다. 요한복음 6장 38절은 아들이 하늘에서 내려오신 이유가 자기 뜻이 아니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기 위함이라고 밝힌다. 요한복음 14장 31절은 그 순종이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성도의 순종도 머리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온다. 주를 사랑하면 하기 싫은 것도, 이해가 안 되는 것도 “make sense or not, do it”이 된다.
하인들은 돌항아리 여섯에 물을 “아귀까지” 채웠다. 그 순종은 대충 채운 순종이 아니라 to the brim, 차고 넘치는 전심의 순종이었다. 그곳에 다른 것을 섞을 틈이 없었다. 믿음은 sight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떠서 갖다 주라” 하시면 갖다 주는 것이다. 오병이어도 계산으로 풀리지 않았지만, 말씀대로 나눌 때 계속 나왔다.
연회장은 좋은 포도주가 나중에 나온 것을 보고 놀란다. 요한은 이 세상이 끝이 아니며, “The best is yet to come”이라는 소망을 비춘다. 표적은 성도를 편안함에 묶어 두지 않고, 기도와 전도와 선교로 밀어낸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전도, 미얀마의 역사도, 교회의 존재도 표적이라면, 그 표적은 많은 사람을 구원으로 부르기 위한 하나님의 사인이다.
Key Takeaways
- 1. 표적은 영광을 보게 한다 표적은 신기한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요한복음의 sign은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보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감추어진 자리에서 드러나게 한다. 참된 표적은 사람을 표적 자체에 묶어 두지 않고 그리스도께로 데려간다. [41:47]
- 2. 순종은 아버지 사랑에서 쉬워진다 예수의 순종은 억지 의무가 아니라 아버지를 사랑하는 아들의 길이다. 사랑이 사라진 순종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이해가 안 되는 순간마다 자기 뜻으로 돌아간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은 “내 뜻”을 내려놓고 “보내신 이의 뜻”을 붙드는 힘이 된다. [54:53]
- 3. 전심은 빈틈을 남기지 않는다 하인들이 항아리를 아귀까지 채운 모습은 99.9퍼센트 순종과 100퍼센트 순종의 차이를 보여준다. 조금 남겨 둔 공간은 언제나 자기 방식과 변명을 섞을 틈이 된다. 전심은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 안에 다른 것을 부어 넣을 자리를 남기지 않는 것이다. [57:41]
- 4. 믿음은 보이는 것보다 먼저 간다 믿음은 모든 계산이 끝난 뒤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 먼저이기 때문에 움직인다. “떠서 갖다 주라”는 말씀 앞에서 하인들은 분석보다 순종을 택했다. walk by faith, not by sight는 현실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라 현실보다 주님의 말씀을 더 무겁게 여기는 삶이다. [67:04]
- 5. 좋은 포도주는 아직 남아 있다 가나의 잔치는 세상이 먼저 좋은 것을 주고 나중에는 낮은 것을 남기는 방식과 반대로 흘러간다. 그리스도 안에서 마지막은 쇠퇴가 아니라 더 좋은 포도주로 드러난다. “The best is yet to come”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다가올 나라를 바라보며 선교와 전도를 포기하지 않게 하는 종말의 소망이다. [6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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