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출발선에서 필요한 것은 새 결심이 아니라 정체성과 사명이다. 누구인지, 왜 여기 서 있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를 분명히 할 때 방향이 선다. 마태복음 28장과 사도행전 1장은 그 방향을 선명하게 비춘다. 의심이 있는 자리에서도 예수는 명령하셨다. 그러므로 확신이 부족한 이들도 이 부르심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사명의 근거는 환경도 열매도 아닌 왕의 권세다. 십자가로 죄 값을 치르시고 부활하신 주께 모든 권세가 위임되었기에, 이 명령은 곧 왕의 명령이다. 변덕스러운 여건 위가 아니라 그분의 주권 위에 서는 것이 교회의 출발점이다.
핵심은 “제자를 삼으라”에 있다. 제자는 어느 지도자의 사람도, 조직의 인원도 아니다. 예수의 제자다. 이를 위해 세 가지가 필수다. 첫째, 가라. 국경을 넘는 선교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경계를 넘는 다가감이다. 먼저 인사하고, 연락하고, 상처 입은 이를 찾아가 시간을 내는 결정이 ‘가라’의 순종이다. 둘째, 세례를 주어 소속과 정체성을 세운다. 삼위 하나님의 이름 안에 속한 자로, 지역 교회 안에 뿌리내리게 하여 함께 살아가게 한다. 셋째, 가르쳐 지키게 한다. 진리는 정보가 아니라 순종으로 배워지는 삶이다. 그래서 관찰–해석–적용–기도로 말씀을 붙들고, 점검과 책임을 통해 실제 순종을 훈련한다.
교회의 크기는 출석수가 아니라 “말씀대로 살아내는 제자의 수”로 측정된다. 예수는 군중을 모으기보다 열두 제자에 집중하셨고, 역사는 그 소수의 순종을 통해 뒤집혔다. 우리의 부족함은 성령의 권능으로 보완된다. 그 권능은 주로 기적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예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타협을 거부하는 담대함으로 나타난다. 교회는 프로그램이나 피난처가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 재충전하고 파송되는 전략기지다. 이 모든 여정의 지속력은 임마누엘의 약속에서 온다. 마태복음이 시작부터 끝까지 선포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진실이,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붙들어 준다. 그러므로 이 공동체는 왕의 권세 위에, 성령의 능력으로, 임마누엘의 확신을 품고, 가서 다가가며, 세례로 소속을 세우고, 가르쳐 지키게 하는 제자 공동체로 걸어간다.
Key Takeaways
- 1. 사명은 왕의 권세에 근거 환경이 좋을 때만 순종하는 사명은 오래가지 못한다. 십자가와 부활로 모든 권세를 받으신 예수의 주권이 사명의 기초다. 변화무쌍한 상황보다 변치 않는 왕의 명령을 신뢰할 때 교회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결정의 기준은 “가능하냐”가 아니라 “주께서 명하셨냐”이다. [06:16]
- 2. 제자 삼기의 세 요소 제자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관계와 순종의 결과다. ‘가라’는 일상의 경계를 넘는 다가감이며, ‘세례’는 삼위 하나님의 이름 안에 소속과 정체성을 세우는 일이다. ‘가르쳐 지키게 함’은 지식을 실천으로 전환하는 책임 있는 동행이다. 이 세 축이 함께 돌아갈 때 교회는 사람을 예수의 제자로 빚는다. [10:38]
- 3. 진리는 지식이 아닌 순종 성경 지식은 시작일 뿐, 순종이 없으면 진리가 몸이 되지 않는다. 히브리적 앎은 행동으로 검증되고 삶으로 증명된다. 점검과 책임을 동반한 작은 순종의 습관이 영혼을 단련한다. 배운 만큼이 아니라 지킨 만큼 성숙해진다. [18:50]
- 4. 성령의 능력은 담대함 사도행전의 권능은 주로 두려움을 뚫고 예수를 증언하게 하는 내적 힘으로 나타난다. 타협의 순간에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마음, 그 한마디 고백이 성령의 역사다. 기적을 좇기보다 충성의 자리로 발을 옮길 때 능력은 작동한다. 순종의 현장에서 성령은 뒤에서 밀고 앞에서 인도하신다. [25:36]
- 5. 임마누엘이 사명을 지속시킨다 사명은 열정으로 시작해도, 임재의 확신으로만 완주된다. 마태복음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임마누엘은 흔들리는 감정과 여건을 넘어서는 객관적 약속이다. “함께 하심”을 신뢰할 때 포기하고 싶은 날에도 발걸음이 이어진다. 동행의 확신이 제자의 일상을 붙든다. [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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