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는 야고보서 전체를 통해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계속 묻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만큼 삶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마지막 다섯 장에서 “당신의 마지막을 무엇이 결정하는가”를 묻고, 그것은 곧 “무슨 가치를 쫓으며 살아왔는가”와 같은 질문이라고 말합니다.
본문은 부한 자들에 대한 경고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부자는 단순히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불신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부요를 자기 욕심의 용도로 바꾸어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입니다. 재물은 하나님이 주신 분복으로 하나님을 인정하고 섬기는 데 쓰여야 하는데, 불신앙은 그 재물을 자기 배를 채우는 도구로 삼습니다. 야고보는 썩은 재물, 좀먹은 옷, 녹슨 금과 은이 그들에게 증거가 되고 불같이 살을 먹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하나님은 품꾼의 빼앗긴 삯과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를 들으십니다. 불의한 부자들은 가난한 성도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그 착취한 것으로 자기 마음을 살찌웠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성도들에게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고 말합니다. 인내는 무조건 버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반드시 오시고 불의한 자를 심판하신다는 약속을 믿는 행위입니다.
농부의 비유는 성도의 삶이 순간순간의 억울함에 매여 사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농부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듯이, 성도는 주의 강림을 바라보며 마음을 굳건하게 해야 합니다. 욥의 인내는 그 대표적인 본입니다. 욥은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자도 여호와시라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도 신앙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욥은 시련을 파멸이 아니라 단련으로 받아들였고, 하나님이 자기를 정금같이 나오게 하실 것을 붙들었습니다.
야고보는 원망하지 말라고 합니다. 원망은 하나님이 그렇게 섭리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맹세하지 말라고도 합니다. 인간은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기 뜻대로 말장난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 할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할 것은 아니라 하는 진실의 언어가 필요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고난당하는 자는 기도하고 즐거워하는 자는 찬송해야 하는데, 둘 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리입니다. 병든 자도 장로들을 청해 말씀으로 위로를 받고, 자기 삶의 의미를 점검해야 합니다. 의인의 간구는 특별한 능력자의 주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약속을 의지하는 믿음의 기도입니다. 엘리야의 기도도 자기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을 따라 드린 기도였습니다.
야고보서는 마지막까지 진정한 믿음을 묻습니다. 유혹과 시련 속에서 믿음은 세워지고, 행함으로 드러나고, 지혜로 성숙해지고, 하나님을 선택함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다섯 장은 불의한 부자와 인내하는 성도를 대비시키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각자에게 주어진 분복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뜻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다시 권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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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 Takeaways
- 1. 재물은 용도에서 드러난다 재물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니라, 그 재물을 무엇을 위해 쓰는지가 믿음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이 주신 분복을 자기 욕심의 도구로 바꾸면, 그 재물은 축복의 표가 아니라 심판의 증거가 됩니다. 썩은 재물과 녹슨 금은 결국 하나님 없이 자기 배를 채우려 한 인생의 증인이 됩니다. [07:35]
- 2. 인내는 약속을 붙드는 행위다 야고보의 인내는 억울함을 모른 척하는 체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반드시 오시고 불의한 자를 심판하신다는 약속을 믿기 때문에 가능한 믿음의 행위입니다. 순간의 분노보다 마지막의 확신이 더 크기 때문에 성도는 마음을 굳건하게 할 수 있습니다. [16:29]
- 3. 욥은 주권을 인정했다 욥의 힘은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었습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자도 여호와시라는 고백이 그의 인내를 붙들었습니다. 시련은 욥에게 파멸이 아니라 단련이었고, 하나님이 정금같이 나오게 하실 과정이었습니다. [19:30]
- 4. 원망과 맹세는 같은 뿌리다 원망은 하나님이 주신 분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에서 나오고, 맹세는 내일을 자기 뜻대로 붙들 수 있다고 착각하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둘 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방식입니다. 야고보는 말장난이 아니라 진실의 언어, 곧 그렇다 할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할 것은 아니라 하는 삶을 요구합니다. [29:15]
- 5. 기도는 뜻을 구하는 것이다 고난 가운데 드리는 기도는 단순히 상황을 바꾸어 달라는 요구가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뜻 안에서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게 하는 믿음의 자리입니다. 엘리야의 기도도 자기 능력의 과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을 따라 드린 기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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