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내용은 ‘야베스’를 통해 고통으로 규정된 정체성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은혜로 이름을 다시 쓰는 길을 보여준다. 태어날 때부터 “고통”이라는 뜻의 이름을 부여받은 삶은 축복의 반대였다. 창세기 3장의 저주를 연상시키는 단어에서 파생된 그 이름은, 출생 자체가 가족에게 상처였음을 시사한다. 사람은 자신이 반복해서 듣는 말로 정체성이 빚어진다. 매일 불려지는 “고통”이라는 호칭은 절망을 강화한다. 그러나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그 어둠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께 크게 부르짖은 선택이다. 원문이 말하는 ‘카라’—절박한 외침—는 신세 한탄이 아니라 생존의 기도였다.
그 외침에는 네 가지 간구가 있었다. “복을 주소서”, “지경을 넓히소서”, “주의 손으로 도우소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소서.” 이는 자기 힘의 한계를 직면한 기도이며,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현실을 들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태도다. 특히 “지경을 넓히소서”는 성공주의적 확장 요청이 아니라 고통이 만든 경계선을 넘게 해 달라는 간구다. 길이 곧게 뚫리지 않고 갈팡질팡하는 시간조차 하나님은 우리의 이해, 인격, 사랑의 폭을 넓히는 재료로 쓰신다. 배운 무기력의 사슬을 끊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넓은 곳으로 나아가게 하신다.
또한 “주의 손”을 구하는 기도는 성숙의 표지다. 성숙은 자립 선언이 아니라 의존의 고백—“주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이다. 기도는 현실도피가 아니다. 기도는 현실과 맞서는 하나님의 무기이며, 하나님은 상한 심령의 부르짖음에 반응하신다. 성경의 결론은 담백하다.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이는 조건이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응답하시는 성품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사회가 만들어 놓은 경계(계급화, 낙인, 체념)에 굴복하지 말고, 지금 있는 그대로의 고통을 들고 무릎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시각을 바꾸시고, 감당할 힘을 주시며, 고통의 이름을 존귀와 영광으로 바꾸신다. 이 네 가지 기도를 오늘의 기도로 다시 쓰는 것이 이름을 다시 쓰는 시작이다.
Key Takeaways
- 1. 고통의 이름에 갇히지 말라 이름과 언어는 정체성을 만든다. “고통”이라 불리며 살아온 기억이 마음을 가두지만, 하나님 앞에 그 이름을 있는 그대로 들이밀 때 이름의 권세가 약해진다. 정직하게 상처를 고백하는 순간, 하나님의 시선이 그 사람의 정체성을 다시 규정한다. 과거의 호명이 미래의 운명이 될 필요는 없다. [05:42]
- 2. 기도는 현실도피가 아니라 전투다 야베스의 기도는 ‘카라’—절박한 외침—로 묘사된다.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현실을 들고 하나님과 씨름하는 것이 기도다. 기도는 상황을 회피시키지 않고, 견디고 이기게 하는 힘을 공급한다. 무릎은 도망치는 발을 멈추게 하고 싸울 용기를 준다. [22:15]
- 3. 경계를 넘어 지경이 넓어진다 고통은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만든다. 그러나 하나님은 실패와 방황까지도 사용해 이해와 인격, 사랑의 반경을 넓히신다. 배운 무기력을 끊고 경계 밖으로 나가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다. 지름길이 아니어도, 그 길이 넓어짐의 통로가 된다. [16:45]
- 4. 주의 손 없이는 못 산다 성숙은 “혼자서 할 수 없다”를 인정하는 담대함이다. 도움을 구하는 자리는 수치가 아니라 은혜의 통로다. 주의 손이 개입할 때 길은 열리고, 마음은 보존된다. 의존의 고백이 곧 승리의 시작이다. [19:16]
- 5. 하나님은 부르짖음에 항상 응답하신다 결론은 간단하지만 결정적이다—“허락하셨더라.” 조건이나 공로가 아니라 상한 심령에 반응하시는 성품 때문이다. 그러니 목소리가 남아있는 동안 부르짖으라. 응답은 하나님의 몫이고, 부르짖음은 우리의 몫이다.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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