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은 단지 날짜를 세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스스로 비우시고 우리 가운데 임하신 임마누엘의 사실을 기억하며 그분의 겸손한 마음을 본받아 기다리는 시간이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권리와 영광을 내려놓고 우리를 찾아오신 그 마음으로 이번 절기를 맞이하도록 초대받았다. [02:02]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을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Reflection: 이번 한 주 동안 매일 아침 기도로 “예수의 마음을 닮게 해 달라” 하고 구체적으로 한 가지 내 권리나 욕심을 내려놓아 보겠다고 말해 보십시오. 무엇을 내려놓을지 오늘 결단해 보세요.
교회는 다양한 사람이 모여 천천히 하나로 빚어지는 곳이며, 그 과정에서 속도를 조절해 상대의 호흡에 맞춰가는 겸손이 필요하다; 여러분은 급함을 내려놓고 상대의 속도로 천천히 가까워지는 훈련을 통해 진정한 하나됨을 이룰 수 있다. [06:08]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극률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을 품고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낮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Reflection: 이 주에 교회 안에서 ‘천천히 가까워지기(아다지오 마논트로포)’를 실천해 보십시오 — 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한 번의 대화나 호의에 급하게 결론 내리지 않고, 그 사람을 더 알아가려고 오늘 한 가지 질문을 건네 보세요.
예수님의 케노시스는 단순한 자기비하가 아니라 타인을 담아내기 위해 온전히 자신을 쏟아붓는 행동으로, 내 안의 공간을 비워야만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품을 수 있게 된다; 여러분의 비움은 공동체를 위한 사랑의 능력이다. [14:03]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을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Reflection: 오늘 하루 동안 ‘한 가지 자기 주장이나 욕구’를 의식적으로 비우고, 그 시간과 에너지를 누군가를 돕거나 칭찬하는 데 쓰기로 하십시오. 무엇을 포기할지 적어 보세요.
겸손은 자신의 못남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장점과 필요를 더 많이 생각하며 그들을 높여 주는 행동으로 드러나며, 가장 쉬운 실천은 진심어린 칭찬과 상대를 귀하게 여기는 태도이다. [16:32]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Reflection: 오늘 만나는 한 사람을 골라 그 사람의 구체적인 장점 세 가지를 마음에 새기고, 기회가 되면 진심으로 그를 칭찬해 보십시오. 누구에게 무엇을 칭찬할지 미리 정해 보세요.
예수님의 낮아짐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높이심으로 열매를 맺는 길이며, 우리가 낮아짐으로써 얻는 것은 결국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생명의 부활과 풍성함임을 기억하라. [28:38]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Reflection: 여러분의 겸손한 행동이 어떤 열매로 돌아올지 하나님께 맡기고, 이번 주 한 가지 낮아짐의 결단을 실천해 보십시오 — 구체적으로 어떤 섬김을 하겠는지 적고 실행해 보세요.
대강절이 시작되었다. 기다림은 단순히 날짜를 세는 일이 아니라, 내 안을 비워 오시는 주님을 모실 자리를 만드는 훈련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겸손을 ‘케노시스’—자기를 비워 타자를 담아내는 마음—로 풀어갔다. 빌립보서가 보여주는 길은, 교회의 하나 됨은 구호나 감정으로 되는 게 아니라 겸손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천천히, 그러나 너무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발을 맞추어 가는 것. 나는 그 속도를 음악의 말로 “아다지오 마 논 트로포”라고 불렀다. 너무 빨라 상대를 밀어붙이지 않고, 너무 늦어 관계가 끊어지지 않도록, 상대의 호흡에 내 호흡을 맞추는 것. 그 속도는 나를 비울 때만 가능하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지만 그 권리를 붙잡지 않으시고 비우셨다. 우리보다 낮아져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십자가까지 복종하셨다. 이는 자기 비하가 아니라 타자를 위한 자기 비움이다. 내 안이 나로 가득 차 있으면 그 누구도 들어올 자리가 없다. 그래서 성경은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낮게 여기라” 하되, 그 뜻은 상대를 ‘더 높은 자리에 올려 놓으라’는 초대다. 나는 이것을 일상의 언어로 ‘칭찬’이라 부르고 싶다. 칭찬은 상대를 더 생각해야 나오는 말이다. 그래서 칭찬은 하나 됨을 향한 가장 품위 있는 속도 조절이며, “나는 너에게 자리를 내어준다”는 표지다.
합창단 이야기처럼, 내 소리가 너무 크면 전체의 화음은 무너진다. 내 소리를 조금 죽이자 마지막 박자를 끝까지 낼 힘이 생겼다. 겸손은 나를 지우는 슬픈 미덕이 아니라, 모두가 더 또렷해지는 길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길을 공허로 끝나게 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비우면 하나님이 채우시고, 우리가 낮아지면 하나님이 높이신다. 그러므로 대강절은 비움의 준비다. 나의 빠름을 내려놓고 너의 느림에 맞추며, 서로를 높여 평화의 주님을 맞이하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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