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7장은 “다윗이 혼자서 생각하였다”는 말로 시작한다. 다윗은 여호와께 묻던 사람인데, 이 대목에서는 묻지 않는다. 기도도 없고, 하나님이라는 단어도 나오지 않는다. 다윗의 마음은 “이러다가 사울의 손에 죽을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그 결론은 블레셋 땅, 그것도 골리앗의 고향 가드로 향한다.
본문은 익숙한 영웅 다윗을 전혀 영웅답게 보여주지 않는다. 다윗은 아기스에게 몸을 의탁하고, 시글락을 얻고,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치면서도 아기스에게는 동족을 친 것처럼 태연하게 거짓말한다. 그 거짓말이 탄로 날까 두려워 남녀를 가리지 않고 증인을 없앤다. 물맷돌을 들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가던 다윗과, 이방 왕에게 빌붙어 살며 거짓과 폭력을 쓰는 다윗이 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성경 읽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아브라함도 그렇고 야곱도 그렇고 다윗도 그렇다. 잘못한 사람이 곧바로 무너지지 않고, 자격 없어 보이는 사람이 오히려 붙들린다. 행한 대로 갚아지는 것이 공평이라면, 은혜는 받을 자격 없는 사람이 받는 것이기에 상식의 눈에는 불공평처럼 보인다. 그래서 질문은 다윗이 얼마나 잘했느냐가 아니라, 은혜가 누구 위에 머물고 있느냐로 옮겨가야 한다.
하나님은 공의를 포기하신 분이 아니다. 죄를 눈감아 주는 재판관도 아니다. 다윗이 행한 대로 갚아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갚으셨다. 베들레헴에서 나신 그분은 다윗과 정반대의 길을 가셨다. 입에 거짓이 없으셨고, 자기 살길을 찾지 않으셨고, 겟세마네에서 아버지의 뜻을 구하며 십자가로 걸어가셨다.
십자가는 역사상 가장 큰 불공평이 일어난 자리다. 죄 없는 분이 죄인 취급을 받으셨고, 저주받을 이유가 없는 분이 저주를 받으셨다. 그 자리에서 공의는 한 치도 굽혀지지 않았고, 은혜는 죄인에게 쏟아졌다. 공의는 그리스도께 쏟아졌고, 은혜는 자격 없는 자에게 흘러왔다.
은혜는 사람을 막 살게 풀어주는 것이 아니다. 은혜는 사람을 사로잡는다. 하나님은 도망가고 버티고 엇나가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기어이 기도의 자리로 돌려놓으신다. 다윗을 블레셋 땅에서도 버리지 않으신 하나님은, 징계와 훈련을 통해 끝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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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 Takeaways
- 1. 은혜는 거룩한 불공평으로 온다 [37:45] 은혜는 행한 대로 계산되는 질서가 아니다. 죄인이 그대로 갚아지지 않는 현실은 상식의 눈에는 불공평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불공평은 죄를 가볍게 여긴 결과가 아니라, 십자가를 통과해 흘러온 사랑이다. 은혜는 값싼 면제가 아니라 누군가 피로 치른 선물이다. [37:45]
- 2. 다윗의 문제는 혼자 생각함이었다 [28:21] 다윗의 무너짐은 큰 범죄보다 먼저 하나님께 묻지 않는 자리에서 시작된다. “다윗이 혼자서 생각하였다”는 말은 기도 없는 판단이 얼마나 그럴듯하게 불신앙의 길을 열 수 있는지 보여준다. 두려움은 약속보다 더 현실적으로 보일 때가 있지만, 그 현실감이 곧 진리는 아니다. 믿음은 자기 마음과 의논하는 자리에서 여호와께 묻는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28:21]
- 3. 십자가는 공의와 은혜의 만남이다 [41:50] 십자가는 하나님이 죄를 그냥 넘어가신 증거가 아니다. 십자가는 죄값이 남김없이 지불된 자리이며, 동시에 자격 없는 자에게 은혜가 쏟아진 자리다. 공의는 그리스도께 쏟아졌고 은혜는 죄인에게 흘러왔다. 그래서 복음은 공의를 약화시키지 않고, 은혜를 더 깊고 두렵게 만든다. [41:50]
- 4. 은혜는 사람을 풀지 않고 사로잡는다 [48:52] 은혜는 “막 살아도 된다”는 허락장이 아니다. 진짜 은혜는 사람을 가볍게 만들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무겁게 만든다. 하나님의 사랑은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기에, 엇나간 자를 그대로 두지 않고 징계하고 다듬고 돌이키신다. 은혜에 붙잡힌 사람은 예전같이 살 수 없다는 고백으로 반응한다. [48:52]
- 5.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신앙의 근거다 [47:49] 신앙의 바닥은 인간의 꾸준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끈질긴 신실하심이다. 다윗의 실패가 끝이 아니었던 이유는 다윗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신실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불순종보다 강하고,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계획보다 크다. 이 사실은 위로이면서 동시에 두렵고 떨림으로 살게 하는 거룩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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