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말의 자리는 한 해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자리처럼, 지난 시간을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해석하도록 부른다. 창세기는 혼돈 속 “좋다(토브)”로 시작해, 요셉의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했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로 닫힌다. 시작과 끝을 감싸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역사의 프레임이다. 요셉의 궤적은 꿈에서 구덩이로, 노예와 감옥을 지나 애굽의 총리로 이어진다. 그러나 중심에는 복수나 자기정당화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라는 자리 지키기가 있다. 상처를 부인하지 않고, 악의 현실을 정직하게 인정하면서도, 그 악마저 “엮어 선으로” 계획하시는 하나님께 주어를 바꿔 드린 고백이 요셉의 핵심 신앙이다.
이 믿음은 한 해를 꿰는 해석학이 된다. 인생에는 역방향으로 도는 톱니바퀴 같은 순간들이 있다. 원하는 방향과 반대로 돌아가는 실패, 상실, 억울함이 있다. 그러나 로마서 8:28의 약속처럼, 서로 다른 톱니들이 맞물려 정확한 시간을 이루듯,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이는 현실 회피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더 큰 손의 질서를 신뢰하는 담대한 신뢰다. 절망의 자리에서조차 생명을 붙잡는 선택은 위대한 순종이며, 하나님이 아직 쓰실 계획이 있음을 증거한다.
대림의 기다림은 사실 하나님의 기다림이었다. “네가 어디 있느냐” 부르시며 수치를 덮고자 가죽옷을 입히신 분, 어둠 가운데 빛으로 오신 분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마지막 장면까지도 친히 책임지신다. 요한계시록의 약속처럼 눈물을 닦으시고, 죽음과 애통이 사라지는 결말을 예비하신다. 그러므로 인생의 마침표는 인간이 찍지 않는다. 선하신 하나님만이 찍으신다. 그분의 마침표는 언제나 선함이다. 다가오는 해를 향해, “해하려 한 것”까지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믿음의 고백을 따라 담대히 살아가라. 그분은 우리를 그냥 두지 않으시고, 선으로 인도하신다.
Key Takeaways
- 1. 선하심으로 시작하고 선하심으로 끝난다 창세기는 혼돈 속 “좋다”로 시작해, 요셉의 “선을 바꾸사”로 닫힌다. 성경의 첫 책이 보여 주는 구조는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은 시작부터 끝까지 선하심으로 역사를 감싸신다. 한 해의 결말을 이 선하심의 프레임으로 읽는 순간, 후회도 새 질서 안에 놓인다. [02:10]
- 2. 하나님 자리를 대신하지 말라 요셉의 첫 반응은 심판이 아니라 자리 지키기였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라는 고백은 복수의 권리보다 주권의 경외를 택하는 신앙이다. 억울함을 딛고도 마음이 맑을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이 경계선에 있다. 심판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이 선으로 엮으실 공간이 열린다. [09:43]
- 3. 해하려 한 것도 선으로 엮으신다 요셉은 악의 현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동시에 “하샤브”—생각하고, 계획하고, 엮으시는—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했다. 상처의 주어를 “그들”에서 “하나님”으로 바꾸는 순간, 과거는 정의되고 미래는 해방된다. 그분은 악의 실마리까지도 당신의 선으로 직조하신다. [10:12]
- 4. 역방향 톱니도 시간을 맞춘다 로마서 8:28의 “합력”은 서로 맞물림이다. 내 톱니가 역방향으로 도는 듯해도, 전체 시계는 정확한 시간을 향해 전진한다. 부분의 손해가 전체의 지혜 안에서 선으로 전환된다. 신뢰는 역방향의 날들까지도 의미로 편입시키는 은혜의 문이다. [14:14]
- 5. 진짜 엔딩은 눈물 없는 나라 인생의 결말은 해피엔딩을 넘어, 하나님이 눈물을 닦으시는 영광의 엔딩이다. 마지막 마침표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찍으신다. 그분의 마침표는 사망의 폐지와 새 창조다. 그러므로 오늘의 눈물은 마지막 장면의 빛으로 해석된다.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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