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바쁘게 달리지만 속이 비는 이유를 우리는 압니다. 목적이 흐려졌기 때문입니다. 주일에만 신앙인이 되는 문제가 아니라, 먹고 마시는 가장 평범한 일상까지 무엇을 향해 사느냐가 핵심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은 “무엇을 하든지”라는 삶의 전부를 “하나님의 영광을 향하여” 정렬하라고 부릅니다. ‘위해서’가 아니라 ‘향하여’입니다. 방향의 문제입니다. 이 축이 서지 않으면 열심은 점점 나를 증명하려는 몸부림이 되고, 결국 허무로 바뀝니다.
로마서 11장 36절은 나침반을 더 분명히 줍니다. 시작도 하나님에게서, 과정도 하나님으로, 끝도 하나님께로. 출처-수단-목적이 하나님일 때 비로소 삶의 구조가 제자도의 길로 정렬됩니다. 일이 줄지 않아도 중심이 서기 때문에 흔들려도 돌아갈 곳이 생깁니다. 시편 73편의 아삽처럼 비교와 억울함으로 시야가 흐려질 때,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는 고백으로 목적지가 다시 선명해집니다. ‘가까이’는 감정이 아니라 붙어 사는 밀착입니다. 하나님이 옵션이 아니라 분깃이 되는 관계입니다.
우리 이민 현실에서 사업과 자녀가 쉽게 ‘목적’으로 올라섭니다. 사업이 커질수록 마음이 더 무거워지고, 교육을 붙들수록 가정의 대화가 불안으로 채워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자녀와 일은 소중하지만, 목적 자리에 앉혀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목적이 앞서면, 성공과 진로도 정직하게,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길은 그분을 가장 큰 기쁨으로 누리는 길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없이 기쁨을 만들려 할수록 기쁨은 더 빨리 달아납니다.
그러나 의지로는 이 전환이 오래가지 못합니다. 죄가 삶의 방향을 ‘나’로 꺾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가 필요합니다. 십자가는 ‘나 중심’의 종말이고, 부활은 ‘하나님 중심’ 새 삶의 시작입니다. 예수 안에서 목적은 교리가 아니라 가능이 됩니다. 그러니 이번 주 아주 작게라도 우선순위 하나를 재배치하십시오. 그리고 가정에서 한 번은 물어보십시오. “지금 이 선택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까?” 그 한 걸음이 방향을 바꿉니다. 하나님을 목적지로 삼을 때, 삶은 가벼워지기보다 바로 서기 시작합니다.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는 기쁨이 그 길에 있습니다.
Key Takeaways
- 1. 목적을 잃으면 열심이 허무해진다 열심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그 열심이 어디를 향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목적이 ‘나의 왕국’으로 미끄러지면 성공은 축복이 아니라 짐이 됩니다. 비교가 기준이 되고, 성과가 정체성이 되는 순간 평안은 빠져나갑니다.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더 열심일수록 더 공허해집니다.
- 2. 시작도 과정도 끝도 하나님께 로마서 11장 36절의 세 전치사는 세계관을 다시 짭니다. 출처와 수단과 목적이 하나님일 때, 수단들이 목적 자리에 올라앉지 못합니다. 일이 사라지지 않아도 ‘축’이 생겨 흔들림을 견딜 수 있습니다. 이 정렬은 내 욕망을 억누르는 도덕이 아니라, 예배로 이어지는 질서입니다.
- 3.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참 복 아삽이 배운 복은 환경 개선이 아니라 관계의 밀착이었습니다. ‘가까이’는 감정의 고조가 아니라 붙어 사는 실제입니다. 하나님이 옵션이 아니라 분깃일 때, 조건이 아니라 관계에서 안정이 나옵니다. 그래서 기쁨은 상황을 초월해 오래 갑니다.
- 4. 십자가와 부활이 방향을 바꾼다 죄는 행동 목록이 아니라 방향의 힘입니다. 십자가는 ‘내가 주인’인 질서를 종결시키고, 부활은 하나님 중심의 새 생명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래서 목적 회복은 결심이 아니라 복음의 적용입니다. 작은 순종 하나가 새 방향을 몸에 새기며, 그 길에서 자유가 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