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만찬은 그리스도의 몸과 보혈을 기억하며 마음의 미움과 교만과 용서하지 못함을 씻는 거룩한 기회로 주어진다.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떡과 피를 상징하는 잔 앞에서 성도는 자신의 믿음을 자랑하기보다, 주님께서 자신을 얼마나 깊이 사랑하셨는지를 바라보게 된다.
프랑스 푸아티에의 개신교 성도들은 박해 때문에 밝은 예배당이 아니라 나무와 바위로 가려진 동굴에 모였다. 그 동굴에서는 성경이 읽히고 해석되었으며, 프랑스 개신교인들의 첫 성만찬이 거행되었다. 예수님은 두세 사람이 자신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하신다고 약속하셨기에, 건물이 아니라 예수님의 임재가 교회를 교회 되게 한다. 겉으로는 어둡고 초라한 동굴일지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성도들이 있다면 가장 거룩한 장소가 된다.
인생의 동굴은 건강의 문제, 경제의 어려움, 자녀의 아픔, 사람에게 받은 상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움으로 찾아온다. 예수님의 임재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보다 누구와 함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선언한다. 다윗의 고백처럼 하나님은 피난처와 힘이시며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다. 동굴은 하나님에게서 떼어 놓는 장소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데려가는 장소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동굴 속의 성도들에게 생명이었다. 세상의 소식을 많이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적게 들으면 두려움과 상처가 커지지만,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은 어둠에 들어오는 한 줄기 빛이 된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는 약속은 상황이 즉시 달라지지 않아도 마음을 붙들어 준다.
그리스도는 가장 어두운 동굴보다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셨다. 겟세마네의 고독, 법정의 조롱, 채찍과 십자가의 버림받음은 죄인들이 영원히 어둠에 머물지 않게 하기 위한 사랑이었다. 그분이 버림받으심으로 성도는 받아들여졌고, 그분이 상하심으로 치유받았으며, 그분이 죽으심으로 생명을 얻었다.
성만찬은 과거의 대속과 현재의 은혜와 미래의 재림을 함께 선포한다. 떡과 잔을 받은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위해 죽으셨고 지금도 함께하시며 다시 오신다는 소망으로 세상에 다시 보냄을 받는다. 그리스도의 끝까지 사랑하시는 사랑과 보혈의 능력은 하나님의 아들딸에게 시련 가운데서도 새 삶을 살아갈 용기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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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 Takeaways
- 1. 교회는 예수님의 임재로 세워진다 예배당의 밝음이나 시설의 풍성함이 교회의 거룩함을 결정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성도들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실 때, 동굴도 거룩한 처소가 된다. 박해와 결핍은 교회를 약하게 만들 수 있어도 그리스도의 임재를 빼앗을 수는 없다. [36:35]
- 2. 동굴은 하나님께 가까워지는 곳이다 인생의 동굴은 건강, 관계, 경제, 외로움의 모습으로 찾아올 수 있다. 그러나 고난 자체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 놓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 되시며, 어둠 속에서 피난처와 힘으로 자신을 나타내신다. [37:47]
- 3. 말씀은 어둠을 비추는 생명이다 세상의 소식은 두려움을 키우고 사람의 말은 상처를 깊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흔들리는 마음을 붙들고, 동굴 속에서도 소망을 일으킨다. 말씀을 먹지 않는 영혼이 약해진다는 사실은 육체가 음식 없이 약해지는 것만큼 실제적이다. [39:10]
- 4. 성만찬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한다 떡과 잔은 성도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점검하는 자리가 아니다. 떡과 잔은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해 얼마나 깊이 자신을 내어주셨는지를 보여 준다. 버림받으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도는 받아들여졌고, 상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치유와 생명을 얻었다. [42:09]
- 5. 보혈은 새 삶의 용기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죄를 씻고 용서를 확증하며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신분을 새긴다. 시련이 급습하는 순간에도 보혈의 능력은 성도를 무너뜨리지 않고 다시 일으킨다. 새 삶의 능력은 자기 확신에서 나오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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