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은 모리아 땅에서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했고, 그 길을 준비하며 올라가는 모든 순간에 하나님을 신뢰하고 무조건적으로 순종했다. 그 순종은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는 믿음의 행위였으며, 그 장소에 남겨진 이름(여호와 이레)은 하나님이 앞으로도 보여주실 구원의 계획을 상기시킨다. [03:21]
창세기 22:1-14
1 이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가로되 너는 네 사랑하는 아들 네 독자 이삭을 데리고 내가 네게 이르신 산으로 가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 아브라함이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의 안장을 치우고 그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할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주신 곳으로 가더니
4 셋째 날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서 본지라.
5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나는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6 아브라함이 나무를 취하여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함께 가더니
7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을 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하니 아버지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노라 아들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8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예비하시리라 하며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더니
9 그들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주신 산 곧 번제할 곳에 이르러
10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을 결박하여 단에 쌓고 나무를 그의 아들 위에 얹고
11 아브라함이 그의 손을 내밀어 칼을 잡아 그 아들을 잡으려 할 때에
12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 나아와 가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13 사자가 가로되 네 손을 그 아이에게 대지 말며 네게 하는 어떠한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14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본즉 번제물로 드릴 수 있는 숫양이 그의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자기 아들 대신 번제로 드리니라.
Reflection: 오늘 하루 당신이 하나님께 기꺼이 놓아야 할 '사랑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 저녁 그 대상을 적고, 하나님께 그 마음을 기도로 내려놓아 보세요.
모리아 산은 한 사건으로 끝나는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구원의 역사를 통해 보시고 역사하신 장소로 드러난다; 아브라함의 시험, 다윗의 회개와 제사, 솔로몬의 성전 건축이 같은 장소에서 이어지며 하나님은 그 땅을 통해 자기 뜻을 계시하셨다. 이 땅의 역사를 보며 하나님이 한결같이 백성을 주목하셨음을 이해하게 된다. [14:09]
역대하 3:1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기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장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Reflection: 당신의 삶 가운데 '모리아'가 될 만한 장소나 기억이 있나요? 그곳에서 하나님이 보시던 일이나 역사하심을 떠올리고, 그 장소를 생각할 때 감사 기도를 한 가지 드려 보세요.
예수님이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하신 말씀이 육체의 몸을 가리키며, 십자가와 부활로 옛 제사의 기능이 완성되었음을 보여준다; 모리아에서 시작된 제사의 상징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성취되어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가 새롭게 열렸다. [17:18]
요한복음 2:19-22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하시니
20 유대인들이 말하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그러므로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Reflection: 오늘 예수님의 몸(십자가와 부활)이 당신의 죄와 삶에서 어떤 변화를 이끌어냈는지 구체적으로 한 가지 적어보세요. 그리고 그 감사로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한 문장을 만들어 보세요.
아브라함은 자신의 눈으로 모든 것을 다 보지 못했지만 장차 올 하나님의 구원 역사(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를 기뻐하며 소망하였고, 그 소망이 그의 믿음을 견고하게 만들었다; 믿음은 과거의 약속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아직 보이지 않는 약속을 기뻐하며 바라보는 태도다. [19:52]
요한복음 8: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에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Reflection: 지금 당신이 기다리고 있는 '아직 보이지 않는 약속'은 무엇인가요? 오늘 그 약속을 하나님께 고백하며 구체적으로 한 가지 감사 제목으로 기도해 보세요.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고, 그 구원은 멸망에서 건져내어 영생에 이르게 하려는 목적을 지닌 선물이다; 이 사랑은 우리를 행동으로 부르며, 구원의 기쁨은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뜻에 동참하는 삶으로 응답되어야 한다. [31:50]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Reflection: 오늘 하루, 하나님께서 맡기신 '복음의 한 사람'을 떠올려 보세요. 그 사람을 위해 구체적으로 오늘 할 수 있는 한 가지 섬김(전화, 기도, 도움의 손길 등)을 실천해 보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보고 계신다. 아브라함이 모리아로 향하던 길에서 내가 붙들었던 핵심은 이것이었다. 하나님은 단지 명령하시는 분이 아니라, 먼저 보고 계시고, 그래서 친히 준비하시는 분이다. 창세기 22장의 히브리어 “보다(라아)”에서 파생된 “이레(보여 주시다/준비하시다)”는 단어가 반복해서 깔려 있다. 아브라함이 “제3일에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보”았을 때, 그는 단지 한 산만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구원의 서곡을 희미하나 분명히 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돌아오리라”고 말했다. 보이는 계산보다 보이지 않는 약속이 더 실제가 된 것이다.
모리아는 역사 속 한 점에 머무르지 않았다. 다윗의 회개와 제단(오르난의 타작마당), 솔로몬 성전,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십자가와 부활로 이어졌다. 성전의 기능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옮겨졌고, 휘장이 찢어짐으로 하나님과의 길이 열렸다. 예수께서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했다”고 하신 말씀은, 모리아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보시는’ 시선이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한 줄기로 이어져 왔음을 밝힌다. 그 시선 안에서 하나님은 죄를 보시고, 제물을 보시고, 결국 우리를 보시며 의롭다 하신다.
그러므로 믿음은 ‘이해가 끝난 후’의 동의가 아니라, ‘보여 주신 것’을 따라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결단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약속의 모순을 견디는 신뢰였다. “이삭을 바쳐라”와 “네 자손이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사이에서 그는 약속의 신실하심을 붙들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일상적 순종과 작고 숨은 충성도 그분 앞에서는 ‘순교적’ 무게를 가진다. 역사를 꿰뚫는 하나님의 시선 안에 우리도 있다. 그 시선이 우리를 붙드시고, 우리로 하여금 소금과 빛으로, 여전히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걷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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