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전도서 12장을 통해, 피할 수 없는 한 가지 진실 앞에 서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죽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멈추어 서서 묻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바쁘고 치열하게 사는가. 무엇이 정말 의미 있는가. 전도자는 “청년의 때에 창조주를 기억하라”라고 초대합니다. 여기서 청년은 특정 나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름받은 모든 신자를 말합니다. 창조주를 기억한다는 것은, 내가 피조물임을 인정하고, 내 시간과 건강과 재물과 열정을 내 것이라 주장하지 않는 겸손입니다. 경기가 끝나면 휘슬이 울리고, 선수는 경기장을 떠나야 합니다. 우리의 호흡과 때도 주님의 것이기에, 우리는 그분 앞에 낮아져야 합니다.
전도자는 노화의 시를 통해, 인간의 연약함을 문학적으로 묘사합니다. 떨리는 손, 구부러지는 다리, 흐릿한 눈, 둔해지는 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쇠약의 길을 말합니다. 이 길은 허무를 일으키지만, 끝이 아닙니다. 흙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은 주께로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지금, 아직 들을 수 있고 응답할 수 있을 때,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부릅니다.
전도서를 기록한 저자는 이 여정에서 두 가지 반응을 권합니다. 하나는 기쁨, 하나는 아픔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금보다 귀하고 꿀보다 달아, 허무의 공백을 채우는 참된 기쁨을 줍니다. 동시에 그 말씀은 우리를 찌르는 못과 같아, 길을 잃은 발걸음을 아프게 돌려 세웁니다. 말씀의 달콤함으로 힘을 얻고, 말씀의 아픔으로 방향을 바로잡는 것, 이것이 지혜입니다. 결국 결론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키라.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입니다. 사람의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을 사모하며, 다정한 공경으로 무릎 꿇는 삶이 공허를 이깁니다.
Key Takeaways
- 1. 청년의 때, 창조주를 기억하라 [08:37] 청년은 나이가 아니라 부르심의 정체성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지금, 창조주를 기억하는 것은 내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그 인정은 시간을 다루는 태도, 재정을 관리하는 방식, 관계를 맺는 자세를 바꿉니다. “지금”의 선택이 영원을 향해 기울어집니다. [08:37]
- 2. 피조물의 자리로 겸손히 돌아가라 [11:08] 생의 휘슬은 하나님이 부십니다. 내가 더 뛰고 싶어도, 그분이 멈추라 하시면 멈추는 것이 지혜입니다. 칼빈의 말처럼 하나님을 알 때 비로소 나를 바르게 압니다. 피조물의 자리로 돌아갈 때, 소유의 집착이 풀리고 순종의 자유가 열립니다. [11:08]
- 3. 노화의 시를 통해 허무를 직면하라 [13:59] 전도자는 노화를 가리지 않고 묘사합니다. 이 솔직함은 우리를 절망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영원한 집을 바라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쇠약을 숨기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십시오. 그 인정이 회개의 문을 열고, 하늘 소망을 선명히 합니다. [13:59]
- 4. 말씀의 기쁨으로 허무를 이겨내라 [16:52] 허무는 공백을 찾고, 말씀은 그 공백을 채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꿀처럼 달고, 동시에 길을 밝히는 등불입니다. 매일의 묵상이 영혼의 기력을 회복시킵니다. 즐거움이 회복될 때, 죄의 매력은 빛을 잃습니다. [16:52]
- 5. 아픔을 통해 바른 길로 돌아서라 [19:51] 말씀은 때로 찌르는 못과 같은 고통을 줍니다. 그 아픔은 정죄가 아니라 방향 교정입니다. 불편함을 피하려 하지 말고, 그 불편함이 가리키는 길을 따르십시오. 순종이 위로보다 앞설 때, 생명의 길이 열립니다.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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