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0장은 단순히 전쟁법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세상 가운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무엇과 싸워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가나안 앞에 선 이스라엘에게는 높은 성벽, 강한 군대, 철병거가 보였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전쟁 전략보다 마음을 먼저 다루십니다. 적이 많고 강할 것이라고 하시면서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전쟁의 승패는 적의 크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장군보다 제사장을 먼저 세우십니다. 칼보다 믿음을 먼저 준비시키십니다. 이스라엘이 싸워야 할 가장 큰 적은 가나안 군대가 아니라 마음속의 두려움이었습니다. 두려움은 현실보다 더 큰 적이 될 때가 많습니다. 문제 자체보다 문제를 바라보는 상상 속 두려움이 사람을 무너뜨립니다. 믿음은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과거에 신실하셨던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신실하실 것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20장은 또한 하나님의 백성이 정복보다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평화를 청하라고 하십니다. 힘이 곧 정의였던 고대 사회에서 이것은 매우 놀라운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언제나 화평에 있습니다. 예수님도 군대를 이끌고 오지 않으셨고, 칼을 들고 오지 않으셨고, 십자가를 지러 오셨습니다. 교회는 세상을 정복하는 곳이 아니라 세상을 섬기는 곳입니다. 공격부대가 아니라 구조대입니다. 죄인을 정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주님께 인도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나 평화가 죄와의 타협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가나안 족속에 대한 심판은 인종 때문이 아니라 죄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수백 년 동안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심판은 하나님의 조급함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완고함 때문이었습니다. 죄는 전염성이 강합니다. 조금만 남겨 두어도 결국 사람을 지배합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정복했지만, 결국 가나안 문화에 정복당했습니다.
오늘날 제거해야 할 가나안은 다른 사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 자신 안에 있는 죄입니다. 탐욕, 음란, 교만, 미움, 성공의 우상,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현대판 우상숭배가 될 수 있습니다. 죄와 평화 조약을 맺을 수 없습니다. 죄를 죽이지 않으면 죄가 사람을 죽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만나는 자리입니다. 죄인이 받아야 할 심판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승리하기 위해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승리하신 예수님의 승리 안에서 싸우는 사람입니다.
##
Key Takeaways
- 1. 두려움보다 하나님의 임재가 더 크다 두려움은 실제 문제보다 더 크게 자라 사람의 마음을 먼저 무너뜨립니다. 하나님은 적이 작다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적이 크지만 함께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두려움이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이 더 크심을 붙드는 것입니다. [35:29]
- 2. 평화는 피하는 것이 아니라 만든다 화평케 하는 사람은 단순히 싸움을 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갈등이 있는 곳에 화해를 가져오고, 깨어진 관계를 다시 연결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됨은 자기 옳음을 증명하는 데서 드러나지 않고, 십자가의 방식으로 관계를 살리는 데서 드러납니다. [38:04]
- 3. 죄와 평화 조약은 불가능하다 죄는 가만히 두면 중립적으로 머물지 않고 반드시 사람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죄악을 엄하게 다루신 이유는 죄의 전염성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성도 안의 탐욕, 교만, 음란, 미움도 작게 남겨 둔 가나안처럼 결국 마음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48:36]
- 4. 십자가는 사랑과 공의의 자리 하나님은 죄를 가볍게 넘기지 않으시지만, 죄인을 멸망시키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십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죄인이 받아야 할 심판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심판과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함께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 [49:25]
Youtube Chap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