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몸의 비유로 교회의 신비를 보여줍니다. 몸은 하나인데 지체는 많고, 지체가 많아도 결국 한 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도 그렇습니다. 유대인과 헬라인, 종과 자유인처럼 세상이 나누어 놓은 경계선은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 된 사람들 안에서 더 이상 사람을 갈라놓는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성령님은 각 사람에게 뜻대로 은사를 나누어 주십니다. 은사는 사람이 골라서 갖는 것도 아니고, 눈에 잘 띄는 은사를 받았다고 더 큰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바울은 앞에서 찬양하고 말씀을 전하는 자리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기도하고 위로하고 돌보고 청소하고 사랑하는 자리도 똑같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박수의 크기와 은사의 크기는 비례하지 않습니다.
발은 손이 아니라서 몸에 붙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귀는 눈이 아니라서 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다르기 때문에 서로 필요하다”는 한 몸의 신비를 보여줍니다. 온몸이 눈이면 들을 곳이 없고, 온몸이 귀면 냄새 맡을 곳이 없습니다. 스스로를 향해 “나는 저 사람처럼 못하니까 필요 없다”라고 말하는 마음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지체로 두셨다면, 그 자리에는 분명한 뜻이 있습니다.
바울은 반대로 눈이 손에게, 머리가 발에게 “너는 쓸데없다”라고 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는 이유, 더 많이 봉사한다는 이유, 더 눈에 보이는 은사가 있다는 이유로 다른 지체를 작게 보면 안 됩니다.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덜 귀하게 보이는 지체에게 더욱 귀한 것을 입혀 주는 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한 지체가 아프면 함께 아파하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함께 즐거워하는 몸입니다. 룻이 나오미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겠다”고 했던 것처럼, 사랑은 다른 사람의 짐이 신경 쓰이는 데서 시작됩니다. 바울은 은사를 말한 뒤 가장 좋은 길, 곧 사랑으로 나아갑니다. 사랑 없는 은사는 시끄러운 꽹과리와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서로 다른 은사를 비교하거나 서열 매기지 않고, 감사와 사랑으로 서로를 온전하게 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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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 Takeaways
- 1. 다르기 때문에 서로 필요하다 [11:42] 바울은 차이를 부족함이나 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발과 손, 귀와 눈의 차이는 서로를 밀어내는 이유가 아니라 서로를 필요하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모두가 같은 일을 잘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르게 주신 은사들이 함께 살아 움직이는 곳입니다. [11:42]
- 2. 보이지 않는 은사도 귀하다 [05:53] 성령님은 마이크 앞에 있는 사람에게만 은사를 주지 않으십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픈 사람을 위로하고, 떠나려는 사람에게 전화하고, 어려운 성도를 위해 기도하는 손길도 교회를 세웁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시선과 박수로 은사의 크기를 재지 않으십니다. [05:53]
- 3. 아무 지체도 쓸데없지 않다 [15:58] 바울은 눈이 손에게, 머리가 발에게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신앙의 연차나 봉사의 양은 다른 지체를 판단할 권리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공동체에 보내신 한 사람 한 사람은 이유가 있고, 그 이유를 다 알지 못해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15:58]
- 4. 한 지체의 아픔은 함께 진다 [21:29] 그리스도의 몸은 누군가의 아픔을 그 사람 혼자 감당할 일로 남겨 두지 않습니다. 룻의 사랑처럼, 다른 지체의 눈물이 신경 쓰이고 기도로 이어지고 작은 돌봄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함께 우는 마음과 함께 기뻐하는 마음이 한 몸 된 교회의 모습입니다. [21:29]
- 5. 사랑 없는 은사는 꽹과리다 [26:40] 바울은 은사를 길게 말한 뒤 가장 좋은 길인 사랑을 가리킵니다. 은사가 아무리 크고 눈에 띄어도 사랑이 없으면 사람을 살리지 못하고 소리만 크게 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은사를 자랑하는 곳이 아니라, 은사로 서로를 세우고 사랑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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