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이 땅에 몸으로 계실 때 병든 자와 장애를 가진 자와 소외된 자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시각장애인을 고치셨고, 청각장애인을 고치셨고, 중풍병자를 일으키셨고, 사람들이 꺼려하던 나병 환자도 손으로 만지셨다. 예수님은 지금 그 일을 제자들과 교회에게 맡기셨다. 누가복음 14장 13절은 잔치를 베풀거든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을 청하라고 말씀한다. 교회는 장애인을 단순히 불쌍히 여기는 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예배와 교제와 복음 안으로 초청해야 한다.
고린도전서 12장은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보여준다. 예수님은 머리시고, 성도들은 각각 지체다. 몸은 살아 있는 몸이고, 유기적인 몸이다. 손과 발이 따로 움직이면 넘어지는 것처럼, 교회 안의 지체들도 서로를 필요로 한다. 바울은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바울은 더 약하다고 단정하지 않고, “약하게 보인다”고 말한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약한 존재이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걸작품이다.
하나님은 약하게 보이는 지체를 몸 안에 두신다. 하나님은 강함만을 통해 일하지 않으시고, 약함을 통해 능력으로 역사하신다. 고린도후서 12장의 고백처럼 “내가 약할 때 곧 강함”이라는 진리는 개인에게만이 아니라 교회에도 해당된다. 교회 안의 연약한 지체는 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는 귀한 통로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덜 귀하게 보이는 지체에게 더욱 귀한 것을 입히신다고 말한다. 몸의 숨겨진 기관들이 생명에 꼭 필요한 것처럼, 눈에 잘 드러나지 않고 약하게 보이는 지체들이 교회에 꼭 필요하다. 세상은 강한 사람과 능력 있는 사람을 높이지만, 교회는 약한 사람을 더욱 존중하고 귀한 것으로 입혀주는 길을 걸어야 한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십자가의 길이고, 섬김의 길이다.
교회는 한 지체가 고통받으면 함께 고통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함께 즐거워하는 몸이다. 발가락 하나만 찧어도 온몸이 아픈 것처럼, 한 성도의 아픔은 온 교회의 아픔이다. 바울은 분쟁 없는 몸, 서로 같이 돌보는 몸을 그리스도의 공동체로 보여준다. 성도는 장애를 가진 형제자매를 육신의 눈으로만 보지 않고, 하나님의 형상과 성령이 거하시는 사람으로 보아야 한다. 예수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환영하는 것이 교회가 걸어갈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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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 Takeaways
- 1.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필요하다 바울은 약한 지체를 “더 약하다”고 단정하지 않고 “더 약하게 보인다”고 말한다. 사람의 눈은 능력과 효율로 판단하지만, 하나님의 몸 안에서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꼭 필요한 자리가 된다. 교회는 연약함을 제거해야 할 결핍으로만 보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자리로 보아야 한다. [10:35]
- 2. 하나님은 걸작품으로 만드셨다 에베소서의 고백처럼 성도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바이며, 단순한 제작물이 아니라 귀하게 빚어진 걸작품이다. 장애와 연약함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우지 못하고, 사람의 존귀를 취소하지 못한다. 교회가 먼저 보아야 할 것은 부족함의 모양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입히신 존귀다. [12:07]
- 3. 교회는 함께 아픈 몸이다 고린도전서 12장의 몸은 서로 분리된 조직이 아니라 함께 느끼는 살아 있는 몸이다. 발가락 하나가 아파도 온몸이 반응하듯, 한 지체의 고통은 공동체 전체의 부름이 된다.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우는 삶은 감정적인 친절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신학적 현실이다. [20:05]
- 4. 예수님의 눈으로 바라보라 육신의 눈은 불편함과 차이를 먼저 보지만, 예수님의 눈은 하나님의 형상과 성령의 거처를 본다. 성도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은 성령을 근심시키는 일이기에, 연약한 지체를 향한 태도는 하나님 앞의 태도와 연결된다. 교회는 장애를 가진 사람을 사역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함께 예배하고 함께 세워질 지체로 받아야 한다.
## [2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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