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주일, 우리는 다시 출발선에 섰습니다. 지난 한 해 “믿음으로 일상을 채우다”라는 고백으로 예배의 자리를 붙들었다면, 이제는 그 믿음이 우리라는 담장을 넘어 세상으로 흘러가야 합니다. 에스겔 47장의 환상은 성전 문지방에서 시작된 작은 물줄기가 점점 깊어져 결국 죽음의 바다, 사해를 살려내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은혜는 고여 있을 때 힘을 잃고, 흘러갈 때 생명을 일으킵니다. 물이 닿는 곳마다 살아나는 것처럼, 복음이 닿는 자리마다 회복이 시작됩니다.
이 길을 어떻게 걸을 것인가에 대해, 성경은 두 개의 ‘테바(방주/상자)’를 보여줍니다. 첫 번째 테바는 노아의 방주입니다. 거센 심판의 물결 속에서 생명을 지키는 피난처입니다. 교회와 우리의 공동체는 이 방주의 기능을 꼭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배는 항구에 머물기 위해 지어진 것이 아닙니다. 두 번째 테바는 모세의 갈대 상자입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강물 위로 띄워 보내는, 믿음의 파송입니다. 상자의 크기가 아니라 상자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이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이중 정체성—방주이자 갈대 상자—이 둘이 함께 있을 때 교회는 건강해집니다. 주일에는 모이고, 월요일에는 흩어집니다. 안에서 채우고, 밖으로 흘려보냅니다.
흘러간다는 것이 거창함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물은 처음 발목, 무릎, 허리로 조금씩 깊어졌습니다. 작은 시작이 길을 엽니다. 힘들어하는 동료에게 건네는 따뜻한 커피 한 잔, 지친 친구에게 보내는 짧은 안부, 부모님께 드리는 서툰 “사랑해요” 한마디가 메마른 땅을 적시는 생명수가 됩니다. 누군가가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조용히 대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은혜가 내 안에 가득 차서, 당신에게로 흘러갈 뿐입니다.”
우리는 고인 물이 아닙니다. 우리는 흐르는 강물입니다. 예배의 축도는 끝이 아니라 파송입니다. 항구의 안전에만 머무르지 않고, 나일강 같은 세상 속으로 믿음의 상자를 띄우십시오. 여러분의 발이 닿는 곳마다, 죽음은 생명으로, 절망은 소망으로 바뀔 것입니다. 성전 문지방에서 시작된 그 물길을, 하나님이 오늘도 앞서 여십니다.
핵심 정리
- 방주와 갈대상자의 이중 정체성
교회는 피난처이자 파송지입니다. 안에서 보호받고 회복되지만, 그 회복은 밖을 향해 움직일 때 완성됩니다. 한쪽만 붙들면 왜곡됩니다. 모이는 은혜와 흩어지는 사명이 함께 호흡할 때, 공동체는 건강하게 자랍니다.
- 흐름이 일으키는 생명의 전환
은혜는 저장품이 아니라 생수입니다. 머물러 있을 때는 썩지만, 흘러갈 때 죽은 바다도 살아납니다. 내가 움직일 때 복음이 움직입니다. 내 일상의 동선이 곧 하나님의 물길이 됩니다.
- 작은 시작이 거대한 변화를 낳음
에스겔의 물도 처음은 발목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미세한 순종을 통해 큰 강을 만드십니다. 즉흥적 대단함보다 꾸준한 작음이 더 멀리 갑니다. 오늘 가능한 한 걸음이 내일의 강폭을 넓힙니다.
- 항구의 안전을 넘어 항해로
안전은 필요하지만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오래 머무르면 배도 썩고, 믿음도 굳습니다. 불확실함을 피하지 말고, 하나님의 손길을 신뢰하며 물 위에 나아가야 합니다. 항해 속에서만 배의 설계가 증명됩니다.
- 상자의 크기보다 손길을 신뢰
모세의 상자는 작았지만 길은 열렸습니다. 우리의 능력, 자원, 환경의 크기가 결과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상자를 이끄시는 주님의 손이 방향과 속도를 정하십니다. 그래서 두려움은 타당해도, 멈춤은 불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