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아덴에 도착했을 때, 도시는 우상으로 가득했고 그의 마음은 거룩한 분노로 격동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회당에서, 그리고 장터에서 대화하며 복음을 증언했습니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이 논박했을 때도 그는 아레오바고의 한가운데 서서 정중함과 분명함으로 말했습니다. “알지 못하는 신”이라는 재단에서 출발하여 창조주 하나님을 선포하고,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성전에 갇히지 않으며 손으로 섬김을 필요로 하지 않고, 오히려 모든 이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는 분임을 밝히 드러냈습니다. 인류는 한 혈통에서 나와 서로 연합과 다양성을 지닌 존재이며,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한다”는 말처럼 우리의 존재의 뿌리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살아 있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형상으로 하나님을 축소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모든 사람에게 회개를 명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사람,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분을 통해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실 날을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 앞에서 반응은 갈립니다. 어떤 이는 조롱하고, 어떤 이는 다시 듣기를 원하며, 또 어떤 이는 믿습니다. 아레오바고의 디오누시오와 다마리 같은 이들도 일어났습니다. 실패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말씀이 스며들고 씨앗이 심어졌습니다.
오늘 우리도 다문화의 장터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낯선 이웃에게 무작정 부딪히듯 전하기보다, 바울처럼 그들의 역사와 언어와 사랑과 상처를 관찰하고 존중하며 다가가야 합니다. 공통의 지점에서 출발해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자이자 심판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자연스럽게 인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경청, 관심, 사랑 속에서 일하십니다. 남은 2025년과 다가오는 2026년에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먼저 듣고, 따뜻한 관찰과 겸손한 증언으로 복음의 다리를 놓는 공동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Key Takeaways
- 1. 우상 가득한 현실을 직면하라 거룩한 분노는 단지 비난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이 빼앗긴 자리를 볼 줄 아는 영적 민감성입니다. 현대의 우상은 눈에 띄는 신상만이 아니라, 성공, 쾌락, 자율성 같은 가치들일 수 있습니다. 그 현실을 회피하지 말고, 사랑으로 들어가 대화의 자리를 여십시오. 담대함은 공격성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충성입니다. [05:54]
- 2. 낯선 문화에 다리 놓기 바울은 “알지 못하는 신”이라는 그들의 언어에서 출발했습니다. 존중은 진리를 희석하는 타협이 아니라, 진리가 흘러갈 통로를 여는 지혜입니다. 상대의 이야기, 상징, 불안을 이해할 때 복음은 전혀 낯선 소리가 아니라, 오래 찾던 해답으로 들립니다. 관찰과 경청은 선교의 첫 순서입니다. [10:23]
- 3. 창조주 하나님으로 복음 시작 복음은 죄책감의 자극에서만 시작되지 않습니다. 존재의 근원, 생명의 주인이 누구인지 바로 세우는 데서 출발합니다. 하나님은 성전에 갇히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시는 분입니다. 의존을 인정할 때 인간의 정체성과 예배의 방향이 회복됩니다. [12:26]
- 4.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 하나님을 먼 하늘의 개념으로 밀어내면 믿음은 관념이 되고, 삶은 분열됩니다. 가까이 계신 하나님을 인식할 때, 기도는 숨 쉬는 일처럼 자연스러워지고, 일상은 예배의 장소가 됩니다. 친밀함이 담대함을 낳습니다. [17:47]
- 5. 회개와 부활이 신앙의 분기점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회개를 명하십니다. 그 근거는 부활—하나님께서 정하신 심판자를 살리심으로 주신 공적 증거입니다. 복음 앞에서 반응은 갈릴 것이며, 조롱과 관심과 믿음이 함께 나타납니다. 우리의 몫은 결과가 아니라 진실하고 인격적인 증언입니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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