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8장은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게 하시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토기장이의 손에 있던 진흙은 원하는 모양으로 나오지 않을 때 다시 뭉개지고, 다시 빚어집니다. 하나님은 그 장면을 통해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내가 너희를 부술 수 있다”는 공포의 선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망가뜨리려고 붙드시는 분이 아니라, 살리고 싶어서 끝까지 붙드시는 분입니다.
예레미야의 현실은 정말 지독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사람들은 듣지 않았고, 오히려 듣고 싶은 말만 해주는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 “아멘” 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넣어주신 적 없는 말을 입에 담고, “너희가 평안하리라”, “재앙이 임하지 아니하리라”라고 말했습니다. 예레미야는 회개하라, 하나님께 돌아가라 외쳤지만, 그 말은 사람들에게 듣기 싫은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맞고, 갇히고, 구덩이에 던져졌습니다. 예레미야는 슬프고 아프다 말했고, 마음이 병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레미야만 지독한 것이 아니라, 예레미야가 살아가던 시대 자체가 하나님 앞에 병들고 배반한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시대를 견딜 수 있도록 예레미야를 계속 붙드시고, 빚으시고, 만들어 가셨습니다. 믿음으로 살기 어려운 시대 속에서도 하나님은 부르신 자를 “알아서 살아라” 하고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를 책임지겠다”는 의지로 토기장이의 손을 드러내십니다.
구겨진 5만 원짜리 지폐는 구겨져도 그 가치를 잃지 않습니다. 깨진 도자기를 금으로 이어 붙이는 킨츠기처럼, 하나님은 깨어진 흔적을 버림의 이유로 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금이 가고 구겨진 인생을 “이 정도의 인생”이라고 판단하지 않으시고, 더 깊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빚어 가십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처럼,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미래와 희망입니다. 토기장이 되신 하나님은 지독한 현실 가운데서도 성도를 붙드시고, 다시 빚으시고, 세상에 둘도 없는 당신의 작품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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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 Takeaways
- 1. 하나님 손 안의 진흙 [07:30] 하나님은 토기장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을 손 안에 두십니다. 그 손은 겁을 주기 위한 손이 아니라, 무너진 모양을 다시 빚기 위한 손입니다. 진흙에게 가장 안전한 자리는 자유롭게 굴러다니는 바닥이 아니라 토기장이의 손 안입니다. [07:30]
- 2. 지독한 시대를 견디게 하심 [18:30] 예레미야의 고통은 개인의 연약함만이 아니라 병든 시대의 무게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시대 속에 예레미야를 던져 놓고 방치하지 않으셨습니다. 부르심은 고생의 시작으로만 끝나지 않고, 견딜 수 있도록 빚어지는 과정이 됩니다. [18:30]
- 3. 거짓 평안은 영혼을 병들게 한다 [13:31] 거짓 선지자들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입에 떠먹여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적 없는 평안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일은 은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영혼을 속이는 일입니다. 참된 말씀은 때로 아프지만, 그 아픔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을 엽니다. [13:31]
- 4. 구겨져도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25:17] 구겨진 지폐는 펴진 지폐와 같은 가치를 가집니다. 인생의 모양이 일그러지고 금이 가도, 하나님 앞에서 존재의 값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상처 난 흔적을 폐기 처분의 이유로 삼지 않으시고, 다시 빚으실 자리로 삼으십니다. [25:17]
- 5. 재앙이 아니라 미래와 희망 [29:02] 하나님의 생각은 하나님의 백성을 무너뜨리는 데 있지 않습니다. 징계와 경고조차도 살리고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간절함에서 나옵니다. 토기장이의 손에 붙들린 인생은 현재의 깨어짐보다 하나님의 미래와 희망으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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